진주 명석면 민간인 유해 발굴 첫날부터 ‘유해·유품’ 드러나
한국전쟁기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7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시 명석면 민간인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24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진행된 경남 진주시 명석면 2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번지 2차 유해발굴은 첫 삽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땅속 10cm 지점에서 유골 일부와 유품인 단추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차 유해발굴지는 1차 유해발굴지와 불과 20여미터 떨어져 있다. 이날 드러난 유해 일부는 67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까닭에 부식돼 흡사 나무뿌리와 같은 형태로 드러났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오래전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땅을 한번 파 헤쳤던 곳이라며 이 때문에 유해가 많이 손상됐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곳은 지난 2014년 2월 1차 유해발굴조사 시기에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이 발굴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충북대 명예교수)은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며,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일명 용산고개라고도 불리는 용산치는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학살자가 발생한 곳으로 당시를 목격한 주민들은 용산치 3개 골짜기 5군데에 718구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목격자들은 “죽은 사람들은 전부 40대 미만의 성인남자였다”며, “죄수 복장에 머리를 짧게 깍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형의 시신을 찾으러 용산고개 갔다는 한 유족은 “용산리 골짜기에 갔더니 포승에 묶인 채 총을 맞은 시신들이 엎어져 있었다”며, “한 구덩이에 40~50구의 시신이 있었고 그런 구덩이가 20~30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가로부터 피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 외면한 경남도와 진주시
이번 유해발굴에 대해 경남도와 진주시가 모르쇠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강병현 진주유족회 회장은 경남도와 진주시에 유해발굴 일부 비용 지원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강 회장에 따르면 경상남도는 재정적으로 유해발굴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주시의 경우는 한국전쟁 당시 피학살된 민간인의 유해발굴은 지자체가 담당할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강 회장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억울하게 국군과 경찰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의 문제는 중앙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면 지방정부라도 나서야 한다”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미루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미루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 때문에 이번 발굴비용은 전액 시민단체와 개인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지난 2016년 공동조사단이 진행한 충남 홍성군의 유해발굴의 경우 홍성군은 유해발굴지원금 2천5백만원과 컨테이너 비용 등으로 모두 3천3백만원을 지원했다.
한편, 정정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피학살된 민간인들의 유해는 전국 곳곳에 방치되어 있으나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일부 유해발굴을 시작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단 이후 현 정부에서도 유해발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중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 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2014년 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출범하고 시민단체 차원의 유해발굴을 진행해 오고 있다.
▲ 박선주 공동조사단 단장이 발굴된 유해를 설명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 유해발굴에 앞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이 개토제를 지내고 있다.ⓒ구자환 기자
▲ 진주 명석면 유해발굴 2차 유해발굴지ⓒ구자환 기자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2017-02-22>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67년만에 드러난 ‘보도연맹 학살’ 유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