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등문공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 ‘무항산자 무항심’(無恒産者 無恒心)이 있습니다.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도 없다는 뜻으로 즉,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조를 꺾은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느 단체든 창립 초기에는 그 기세와 의욕이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덮을 만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기르는 것이 더 어렵듯이 단체를 만들기는 쉬우나 유지하기는 훨씬 더 힘듭니다. 연구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창립 이후 오랫동안 회원들의 회비만으로는 한달치 월세도 충당할 수 없었던 극히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근 연구원들과 활동가들이 어쩔 수 없이 부업 전선에 내몰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항심을 지키기 위해 항산에 나섰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93년 여름 연구소 소식지에 ‘김정문알로에’ 광고가 실립니다. 연구소 발기인 중 한 분이 평소 안면이 있는 김정문알로에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광고비를 2~3차례 받아 회보 발행비 등에 보탠 것입니다. 당시 회보는 발행부수도 미미하여 회사 입장에서는 광고효과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 후 연구소의 어려운 처지를 전해들은 몇몇 회원들이 연구소에 몇 가지 수익사업을 제안합니다. 이때부터 장사와 이재에는 문외한에다 잼병인 상근자들이 부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는데 실제로 몇 달 만에 접은 사업도 있고 몇 년간 지속했던 사업도 있었습니다. 1995년경에 시작한 먹는 샘물 판매업은 연구소가 일종의 대리점 역할을 했고 당시 김재운 조직담당 상근자(현 서울동부지부장, 민주주의국민행동 사무국장)가 직접 배달도 나섰습니다.
연구소가 손을 댄 부업을 나열해 보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대리운전, 핸드폰 판매, 꽃배달 서비스, 신용카드, 보험가입, 자동차 판매, 신문 및 주간지 구독 등. 연구소 회원들이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가입할 경우 일정 수수료가 연구소로 기부되는 방식입니다. 이밖에도 가령 한의원을 개원하신 분이 연구소 회보에 작은 광고를 하고 광고비를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즉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다른 회원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과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었고 게다가 연구소에서 부업 업무를 담당하는 상근자들의 스트레스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상근자는 “내가 보험업무 관리하려고 연구소 들어왔나?”하고 깊은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그 상근자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무원 일을 그만두고 역사 관련 부문에서 뭔가 기여하고 싶어서 찾아온 연구소에서 보조업무로 보험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당시 상근자들은 “이것이 다 가난 때문이니 조금만 참자”고 서로 다독일 뿐이었지요.
현재는 모든 부업들을 접은 상태이고 자동차보험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연구소와 오랜 신뢰관계에 있는 회원을 통해서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면 일정한 수수료를 연구소에 기부하는 방식인데 이런 방식의 수익사업은 현재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연구소가 직접 관여하는 수익사업은 아니지만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을 통해 연구소에 기부되는 금액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SNS가 일상화된 시대상의 반영이겠지요.
연구소는 내년 3월 백범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가 묘역이 자리잡고 있는 효창원 인근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하려는 목표 아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 보금자리에서는 연구소 모든 연구원과 활동가들이 정부예산이나 수익사업에서 벗어나 오로지 회원님들의 든든한 회비만으로 연구소 본연의 과업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방학진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