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중국공산당은 건국 당시의 초발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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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가는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컸다. 고래와 새우 싸움에 비견할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에서 공산당의 승리는 엄혹했던 5공화국 군부독재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희망이었다. 숨죽여 읽었던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8억인과의 대화>, 미국기자로 대장정에 종군했던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서양 의사로 중국혁명에 참여했던 <닥터 노먼 베쑨>, 중국공산혁명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소심한 가슴을 단련시켜주던 도구였다.

역사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젊음과 열정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던지는 모습은 낭만적이고 멋졌다. 수천 년 강고하게 이어진 계급을 타파하겠다는 무모함, 계급구조에서 파생된 권력과 자본의 억압된 고리를 끊고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참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은 젊은 가슴을 타들어가게 했다. 놀랍고 두렵고 번민하게 했던 김산(장지락)의 삶과 스스로 기득권을 버리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중국혁명가들의 삶은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눅진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날 중국은 발전했다. 발전의 의미가 경제적 풍요라면 분명 그렇다.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 2위다. 군사력도 마찬가지다. 인구는 세계 1위, 1위를 달리는 상품이 6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제 중국은 개혁 개방 30여 년 만에 미국이 가장 겁내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과 가장 인접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성장한 중국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평택지역만 해도 도심 곳곳에 중국인들의 가게가 자리 잡았고 안중읍 구시가지는 벌써 중국상인들 차지가 되었다. 미국의 압력으로 사드 배치를 받아들인 박근혜정권은 한편으로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역사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30년만 지나면 명실 공히 세계 1위 국가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를 선출한 미국, 트럼프에 의해 자멸하는 미국을 보면 그 예상이 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2009년에 제작된 〈건국대업(建國大業)〉은 2011년에 제작한 〈건당위업(建黨偉業)〉의 후속작 성격이 짙다. 감독도 같고 그려진 인물들도 비슷하지만 제작은 〈건국대업〉이 앞섰다. 국공내전을 다룬 〈건국대업〉이 중국공산당 창당을 다룬 〈건당위업〉보다 앞선 것은 〈건국대업〉을 제작한 2009년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건국대업〉을 제작하면서 중국공산당의 뿌리, 그 시기의 초발심(初發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국가와 당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답게 제작비만도 편당 1800억 원이 들었다. 출연배우도 중국과 홍콩을 망라한 호화진용이다. 〈건당위업〉에는 주윤발, 유덕화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가 등장했고, 〈건국대업〉에는 성룡과 같은 대스타가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영화팬들이 보면 엄청난 사건을 딛고 영화는 제작되었다.

개봉 당시 중국 흥행 1위가 국가의 총동원령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받는 것을 보면 이 영화를 만든 주체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45년부터 1949년 국공내전의 종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까지다. 제3차 국공합작으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라는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국민당과 공산당이 일제 패망 후 중국대륙을 놓고 일전을 벌였던 역사적 상황, 가슴 뜨겁게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열고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를 선정하고, 한때 반대편에 섰던 세력까지 포용하여 주석과 부주석을 선출하는 과정을 숨 가쁘고 벅차게 표현한다. 중국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든 주체세력의 철학을 보여주며, 국민당과 장개석이 왜 패배했는지,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기반한 정부 수립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두가 평등한 국가는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촘촘히 보여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오늘날까지 중국의 현대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우리는 안다. 건당(建黨)과 건국(建國)의 중심세력들이 그들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갔는지도 안다. 손문의 둘째부인으로 중국혁명의 어머니로 칭송받았던 송경령 선생의 삶, 모택동의 동지이며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었던 주은래 부부의 진실 되고 검박한 삶을 통해 중국혁명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다. 그럼에도 한편에 그려진 부정적 요소도 지울 수 없다.

모택동의 편협한 판단이 가져온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의 참된 가치를 말살한 재앙이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건강한 사회주의적 기풍이 병들고, 인민은 자본에 물들었으며, 빈부의 격차, 지역 간, 민족 간 격차로 갈등과 분열의 조짐마저 보인다. 지나친 중화주의적 태도, 약소국에 대한 거만하고 제국주의적인 자세도 우리가 바랐던 사회주의 중국이 아니다.

그러면 중국정부가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건국대업〉을 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체제보다 더 모순된 사회로 치닫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 혁명의 초발심을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한 번쯤 뒤를 돌아보고 중국 건국세력이 어떤 철학과 목적으로 혁명에 목숨을 걸었고 국가를 건설했는지 되새김질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 오늘의 중국은 그때의 초발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이 영화는 묻는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8년이 지난 현재 중국이 그 초발심을 견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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