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사진이 처음 소개된 때는 개항을 전후한 시기였다. 통상을 강요하던 서구열강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종군사진가와 선교사들이 다수의 풍경·인물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이후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외교․선교․학술․취미․언론보도 등 다양한 목적으로 많은 사진을 촬영했다.
특히 이 시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물·풍경 스테레오 사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조선의 서양인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테레오 사진은 똑같은 도판이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사진으로 입체 안경으로 보면 시점(視點)의 차이로 인해 입체적으로 보인다. 이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입체경(stereoscope)이 반드시 필요하다.
2009년 3D 영화 ‘아바타’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입체영화 제작이 봇물을 이루었듯이 낯선 이국 풍경이나 생활상이 담긴 입체사진은 유럽과 미주는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에서까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키스톤 뷰 컴퍼니(Keystone View Company)나 언더우드 앤 언더우드(Underwood & Underwood) 같은 회사들이 입체사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조선에 첫발을 디딘 서양인들은 생소한 조선의 풍광을 스테레오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스테레오 사진의 뒷면에는 그들의 시선으로 조선의 이미지를 설명하였다. 그들은 조선을 과거에는 중국의 속국이었고 지금은 일본의 속국이라고 소개한다. 한반도는 영국이나 미국 미네소타 주와 같은 크기인데 인구는 7배가 많으며 마을은 구불구불한 길가에 작고 낮은 집들이 서로 붙어 있다고 했다. 또 집에 들어가면 마루는 지저분하고 일본풍의 대나무로 만든 단순한 가구들이 눈에 띄고 조선의 소녀들은 6~7살이 넘으면 집밖으로 나올 수도, 소년들과 어울릴 수도 없다. 그리고 사시사철 흰색 옷만 입는다고 전했다.
조선시대의 생활상이 담겨 있는 이런 사진들은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해주지만,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조선은 이색적이라기보다 미개한 상태로 치부되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문화국가 조선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쇠락한 ‘은둔의 나라’(Hermit Kingdom)로 규정되었다.
서양인들의 이러한 시각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일제는 효율적인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의 문물과 각 지역의 풍속들을 세심하게 기록한 엄청난 양의 사진과 문헌을 남겼다. 특히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기초적인 소품만을 설치한 채 연출하여 조선의 풍속과 조선인들의 특성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재현했다.
이렇게 미개함과 야만성, 불결함과 나태함으로 표상되는 조작된 이미지는 국내외로 널리 전파되어 조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형상으로 고착화되었다. 일제는 이런 사진을 선전도구로 적극 활용하여 조선이 열등하다는 이미지를 창출했으며, 원시적이고 전근대적인 조선과 문명화된 근대 일본을 대비함으로써 식민지배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피사체가 된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근대화의 물결을 과연 문명화로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 강동민 자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