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교과서는 실패로 끝났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포함한 시민사회, 시·도 교육청, 정치권(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손을 잡고 벌인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운동의 ‘거의’ 완벽한 승리다. 굳이 ‘거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아직 국정교과서 싸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끝내 나왔고 국정제는 아직 폐지되지 않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완수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국정교과서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교육부에서 밀어붙이는 검정교과서 개발 중지 및 새로운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른 검정교과서 개발, 독립적인 ‘역사교육위원회’(가칭) 설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국정교과서 금지법안의 조속한 처리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보기를 들어 국정교과서 금지법안은 역사교과용 도서를 대상으로 하는데 초등학교의 경우 역사를 사회과목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국정교과서 싸움을 하면서 역사교육의 문제가 초등교육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는 국정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라고 국정교과서를 통해 하나의 역사만을 배울 이유는 없다. 수많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반대서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는 이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이제 초등학교 교과서의 국정제 문제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통해 자본이 교육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전경련 출신의 전희경이 국정교과서 옹호의 선봉 역할을 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경련은 10여 년부터 역사교과서와 경제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기업을 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역사교육과 사회교육에 부당하게 개입해 왔다. 교육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해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역사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과목의 경우 검정제임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의 요구에 의해 기업 중심의 교과서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의 교육은 시민교육과 관련된 모든 과목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1992년에 헌법정신에 비추어볼 때 국정제보다는 검정제, 검정제보다는 자유발행제가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검정제를 넘어 자유발행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역사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한꺼번에 자유발행제로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유발행제에 가까운 인정제를 목표로 교과서 발행제도를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통일, 평화, 인권을 주된 가치로 삼는 교과서가 나올 수 있도록 새 정부는 교과서 발행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교육법의 국정교과서 관련 조항 삭제 등)를 해야 할 것이다.
국정교과서 싸움의 승리를 완전하지 않다고 본 또 하나의 이유는 더 근본적인 것이다.
친일독재세력의 역사쿠데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전두환과 이순자의 회고록 출간이 단적인 보기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복권시킴으로써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흐름을 친일과 독재 중심으로 반전시키려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적폐세력, 그리고 <조선일보> 등의 수구언론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극력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국정교과서 저지는 역사쿠데타에 대한 부분적인 승리일 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일독재의 후계자들은 아직도 근현대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그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정부 출범은 친일독재를 청산하는 마지막이자 결정적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정부에서 헌법 전문에 명기된 헌법정신의 상징인 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3·1운동기념관, 평화통일기념관 등의 건립도 전향적으로 추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