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우리 연구소의 초창기 이사진들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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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소의 창립 당시 명칭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다. 현재의 명칭인 ‘민족문제연구소’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앞의 이름에서는 비타협적 비장감과 투쟁성이 확연히 느껴진다. 초창기 회원들의 경우 반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향수도 많다. 김성환(현 민청련 동지회장) 당시 사무차장은 광복 50주년과 문민정부 출범이라는 시대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연구소 활동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로 사단법인화와 이름 바꾸기를 추진했다고 밝혔다.(『계간 반민족문제연구』 1994년 겨울호)

1991년 창립부터 1996년 6월 법인등록까지 연구소는 소장과 연구원만 있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사진 등록이 필수요건이어서 이사장을 비롯한 다수의 이사진을 구성해야만 했다. 이사진 섭외는 김봉우 초대 소장이 도맡았다. 초대 이사장은 인권변호의 대명사인 이돈명 변호사였는데 그외에도 이사장 물망에 오른 사회 원로들이 몇 분 더 있었지만 고사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대선 후보들 입에서조차 심심치 않게 ‘친일청산’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연구소가 사단법인화를 추진하던 1990년대 중반에 친일문제는 여간 껄끄러운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이 이러할진대 연구소 이사로 이름을 올린다는 일은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단이었다. 연구소 입장에서도 누구를 초기 이사진으로 모시느냐는 대단히 중요했다. 왜냐하면 신생 단체의 경우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그 단체가 내세우는 원대한 포부보다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 단체에 모여 있는가에 쏠려 있다. 대개 단체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그 단체의 성격과 미래를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단법인 설립전인 1995년 1월 신년 모임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등기이사는 이돈명 변호사(이사장)와 김봉우 소장(상임이사)을 비롯해 만화가 이두호 선생, 민주화운동가 정성헌 선생, 소설가 한수산 선생이 맡았다. 이두호 선생은 『객주』 『임꺽정』 등 굵직한 작품을 만화로 그려내면서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의 힘과 정서를 찾아내고자 한 만화계의 거장이다. TV 만화로도 제작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머털도사〉 역시 이두호 선생 작품이다. 정성헌 선생은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분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과 DMZ 평화생명동산 등 생명·평화·통일운동에 상징적인 분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데 운동권 후배들에겐 ‘쓴 소리꾼’으로도 유명하다.

한수산 선생은 19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1981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중 소설 내용 가운데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 뒤 국내에서의 창작 작업에 회의를 느끼고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가 1992년까지 사실상 망명생활을 하였으며, 이때의 구상과 조사를 바탕으로 원폭에 희생된 피폭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 『까마귀』와 최근 이를 개작하여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군함도』를 펴냈다.

5인의 등기이사 외에도 비등기 이사진으로 김상근, 김정헌, 명진 스님, 송기인, 오충일, 이건용, 이재정, 이창복, 이해학, 제정구, 한상범 선생 등 당대의 존경받는 분들이 이름을 올리고 도움을 주었다. 이들 모두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역사정의실현에 평생을 바치신 분들이다. 특히 송기인 신부는 2006년과 2007년 2년 동안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받은 2억원이 넘는 2년치 연봉 전액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으로 쾌척한 바 있다.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한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현재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활동에 관심과 후원을 보내고 있다. 이해학 목사는 2006년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결성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는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면서 연구소 발전의 토대를 다져놓았다.

‘스펙사회’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너나없이 이력서에 사회활동 경력을 한 줄이라도 더 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의 대의와 명분을 위해 이름 한 줄 올림으로써 스펙은커녕 불이익과 보이지 않는 감시를 자초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름도 낯설고 과연 얼마나 존속할지도 불투명했을 신생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이사로 기꺼이 동참하여 연구소의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이고 내부적으로 상근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던 초창기 이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연구소는 앞으로도 그분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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