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정미홍 씨가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 혈서기사를 조작했다”는 취지의 글을 지속적으로 퍼트리자 연구소는 정미홍 씨를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민사 손해배상소송은 1심과 2심에 이어 최종심까지 연구소가 승소하였다. 올해 1월 25일 대법원은 연구소에 대한 정미홍 씨의 명예훼손 사실이 인정된다며 3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이렇게 민사소송은 연구소 승소로 마무리되었지만 형사소송은 현재 1심이 진행되고 있다. 3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을 증인으로 하는 두 번째 증인심문 공판이 317호 형사법정에서 열렸다. 오후 2시 30분, 법무책임자인 나는 박 실장을 교대역에서 만나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317호 형사법정 앞은 이미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로 가득차 복도를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였다.
증인심문을 마친 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광경. 오른쪽 태극기 바로 밑 빨간옷이 정미홍
“우리 뒤에 친박집회 관련 재판이 있나봐요.” 박 실장도 그런 것 같다며 “이런데서 태극기 부대를 만나다니 별일이 다 있네”라며 실소를 지었다. 10여 분쯤 지나 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방청객이 너무 많아서 의자가 부족하여 뒤에 온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야 했고 더 늦은 사람들은 앉을 자리도 없어서 서있어야 했다.
개정 시간이 임박하자 정미홍 씨와 변호인이 들어왔다. 앉아 있던 방청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까 그 노인들은 바로 우리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정미홍 씨가 방청객을 향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미홍입니다”라고 하자 방청객들은 “예쁘다”“힘내요”“종북척결”등을 외쳤다. 팬클럽 행사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미홍 씨가 우리 쪽을 가리키며 “저쪽에 민족문제연구소 분들도 오셨네요”라고 하자 야유가 터져 나왔다. 경위들이 조용히 하라며 제지했지만 노인들의 고함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법정은 공판 내내 시끌시끌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노인들은 정미홍 씨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트위터로 동원한 사람들이었다.
제가 처음으로 제 재판에 와주시길 청해 봅니다. 오늘 오후 3시에 민족문제연구소와의 재판이 있습니다. 오늘은 민문연 간부 박한용을 증인으로 신청해 직접 증인신문을 진행합니다.(후략)
당일 오전 10시 30분경, 정미홍 씨가 트위터로 재판소식을 알리자 마치 5분 대기조처럼 5, 60여 명이 순식간에 모인 것이다. 덕분에 법정은 정미홍을 위한 특설무대 같았다
재판이 시작되고 증인선서가 있었다. 증인심문을 시작하기 직전, 판사는 방청석을 향해 선글라스를 낀 사람은 벗으라고 말했다. 제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큰소리로 “눈다래끼 났어요”라고 말하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험한 말이 나왔다. “빨리 벗어”, “벗으라는데 뭔 말이 그리 많아.”견디다 못한 여성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이런 XX 개X 같은 XX들”이라고 욕했고 그 말을 들은 다른 할아버지는 “머라고 했어 이 씨XX아”라며 서로 쌍욕을 해댔다. 피아(彼我)가 구분되지 않는 아리송한 상황은 경위들의 호통소리에 종료되었다.
정미홍 씨는 연구소의 활동과 박정희 혈서에 대해 많은 질문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극우인터넷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혈서기사를 보도한 신문이 만주일보라고 수년간 주장하다가 만주신문으로 말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1939년 3월에 지원했는데 합격은 1940년이다. 1년 차이가 난다. 말이 안 된다” 등이다.
대부분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박한용 실장은 사실 그대로 답변했다.
“연구소가 만주신문의 혈서기사를 발굴한 것은 2009년 10월이다. 그 전에는 신문명을 콕 집어 말하지 않았고 다만 이러저러한 증언이 존재한다고 했을 뿐이다.”
“만주신문 기사내용에 나오듯이 박정희의 1939년 혈서군관지원은 거절당했으며 그해 하반기에 다시 지원하여 1940년초에 합격했다.”
박한용 실장이 답변할 때마다 정미홍 씨는 사실이 아니라고 소리치며 방청석을 바라봤고 그때마다 야유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방청석의 광기어린 반응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경위의 숫자를 늘렸다. 시작할 때 1명이었던 경위가 심문이 끝날 무렵 10여 명이나 되었다. 심문이 끝나고 박 실장이 증인석에서 내려오자 흥분한 방청객이 “부끄러운 줄 알아”, “빨갱이새끼, 너 이리 나와”라며 소리를 지르고 위협했다. 경위 4명이 박 실장을 둘러싼 채 재판정을 지나 법원 밖까지 호위했다. 다음번 재판 일정을 조정하는 것으로 재판은 마무리되었다. 노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이겼다며 “정미홍 정미홍”을 연호했다. 법원 정문 앞에서 정미홍 씨의 연설이 시작되었고 노인들은 “빨갱이를 죽이자”고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정미홍 씨는 연구소가 ‘박정희 혈서기사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으나 연구소는 언제 어떻게 무엇을 조작했는지 증거를 가져와서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4년여의 소송기간 동안 정미홍측은 단 한 건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 이외에 전혀 증거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방청객을 동원하고 이를 이슈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판을 이용하고 있다.
연구소는 사익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임선화 기록정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