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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복 서울중부지부 회원, 책방 풀무질 대표
나는 서울 명륜동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3년째 꾸리고 있다. 1985년 여름 처음 연 이 책방은 일꾼이 3번 바뀌었고 내가 4번째 일꾼이다. 그때는 전국에 있는 대학 앞에 내가 꾸리고 있는 풀무질 같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하나 둘씩 있었다.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손가락에 꼽을 정도만 남았다.
책방 이름이 왜 ‘풀무질’일까. 대장간에서 낫이나 칼을 만들 때 불을 피우고 센 바람이 일어나도록 푸푸 불어주는 기구가 ‘풀무’다. 그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행위가 바로 ‘풀무질’이다. 이 단어에는 1980년 5월 전두환 일당들이 광주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정권을 잡은 것에 불바람을 일으켜 맞서려는 저항의 뜻이 담겨 있다. 풀무질은 그 당시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명칭이었고 그것을 본따 책방 이름을 지은 것이다.
전에 일했던 사람들은 2, 3년씩 풀무질을 꾸렸다. 나도 딱 10년만 책방을 하려 했다. 2003년 4월 1일이 내가 책방을 꾸린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책방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농사꾼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게는 책방을 그만 두지 못하게 만든 두 가지 큰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책방을 꾸리고 3년 뒤인 1997년 4월 15일에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서울구치소로 옮겨 한 달을 갇혀 있었다. 그때 수사관들은 나를 국제사회주의자 조직원으로 몰려 했는데 아무런 혐의가 없자 이적표현물을 팔았다는 죄를 뒤집어 씌웠다. 책방 풀무질에서 파는 책들은 다른 큰 책방에서도 파는 것들이었다. <전태일평전>,월간말지같은것들이다.그 당시있었던재미있는일화한 가지.그때 경찰들이 압수한 책 가운데 박라연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서울에사는평강공주>라는시집이있었다.나중에이적표현물목록을보니그책제목이‘서울에사는평양공주’라고 잘못 기재돼 있었다. 제목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지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내가 수사관에게 이런 책들은 일반 대형서점에도 파는 책인데 그 서점 주인들은 왜 안 잡아오느냐고 했더니, 그들은 책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고 나는 책을 팔아서 북괴를 이롭게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나가면 돈벌이도 안 되는 책방을 그만하고 그 자리에 술집이나 차리라고 했다.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 풀무질을 잘 꾸려야지 다짐했다.
한편 2003년 내가 책방을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또 다른 일이 있어났다. 그해 봄 미국은 이라크를 쳐들어가서 그곳 아이들을 미사일로 무참히 학살했다. 나는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른들이 벌인 싸움에 애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밤잠을 설치고 글을 썼다. 전쟁반대공동행동에 함께 하자는 내 글이 <한겨레신문>‘왜냐면’꼭지에실렸다.그 글이나오고여러사람이풀무질로 전화해서 내게 힘을 주었다. 나는 책방 일을 하느라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꼼짝없이 책방 안에서 지냈다. 어디 집회 한 번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써서 책방에 오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맑고 밝은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날부터 새벽잠을 줄이고 글을 썼다. A4 용지 한쪽 분량으로 글을 써서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건네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사건 안 사건 책방에 온 손님은 내가 쓴 글을 받아야 했다. 언제부턴가 그 글은‘공포의 A4’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내가 쓴 글은 꼭 받아가서 읽어야 하는 공포물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풀무질을 계속 꾸리고 있다. 책방 살림이 어렵다. 1995년부터 인터넷서점이 생기고 도서정가제도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싼값으로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너도나도 손전화기를 가지고 있어 온라인으로 어디서나 쉽고 싸게 책을 산다. 지지난해부터 10%만 할인해주는 부분도서정가제가 도입되었지만 무너지는 책방 살림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갈수록 책방 빚이 늘어서 책방 문을 닫고 싶어도 빚을 갚을 수 없어 닫지도 못한다.
최근 책방 풀무질에서 새로운 일을 꾸몄다. 책방 바로 옆 자리에 ‘풀무질책놀이터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4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선 동네 아이들이 와서 그림책도 읽고 옛이야기도 듣고 아이들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여 바느질도 하고 빵도 만들고 영화도 같이 본다. 시읽기모임, 소설읽기모임, 녹색평론읽기모임, 철학고전읽기모임, 환경책읽기모임 등 책읽기모임도 여러 개가 있다. 글쓰기모임도 있어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나눈다. 모임에는 적게는 서너 사람, 많게는 열 사람 안팎이 온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힘들어 한다. 강연장에 가서 듣는 것은 쉬운데 스스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책을 읽어야지 생각이 바뀌고 자기 것이 된다. 물론 강의를 즐겨 들어도 생각이 바뀌고 자기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강연장을 나가면 다시 살아왔던 대로 살기 쉽다. 힘들게 책을 읽고 길에서 실천하는 삶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꾼다.
풀무질에서는 이름난 사람들을 불러서 강연을 듣는 자리는 잘 만들지 않는다. 가끔 책읽기모임에서 고른 책을 쓴 사람에게 알리기는 하는데 굳이 오라고 하지 않고 글쓴이가 직접 오더라도 강사비도 없다. 책모임을 하는 동안에도 글쓴이는 아무 말도 못한다. 모임을 마치고 20분쯤 묻고 답하는 시간만 주어진다.
모임을 마치면 꼭 뒤풀이를 한다. 뒤풀이자리에서는 글쓴이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책읽기모임에서 글쓴이가 오는 것은 책을 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글을 쓴 사람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된다. 시내 큰 책방에서는 저자사인회를 하면서 책도 팔고 글 쓴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우리 모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글쓴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글쓴이가 듣기에 아주 불편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한다. 글쓴이가 다음 글을 쓸 때는 이런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훨씬 유익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어른들도 행복한 세상이고 지구마을이 평화로운 세상이다. 2000년대 초에 한 방송사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께 물었다. 어떤 꿈을 꾸며 사시냐고. 두 분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이 와야 한다고. 그랬더니 그 기자가 선생님께서는 1970년대에도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냐고 했으나 선생님들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또 다른 꿈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것이다.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려면 남과 북 모두 무기를 버려야 한다. 남과 북이 무기를 버리려면 한반도에 힘이 센 다른 나라들이 물러가고 쳐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 모순이다. 무기를 가진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데 우리 남과 북은 무기를 버리라니.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1948년 12월 군대 폐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가 무기를 쌓아서 만드는 평화가 얼마나 갈까. 상상력이 있어야 평화도 온다.
책방 풀무질에 오는 사람들과 이 두 가지 꿈을 나누고 함께 이루고 싶다. 동네 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살맛나는 곳이 되고, 마을이 살아야 마을 사람들이 서로 웃고 떠드는 정이 생긴다. 한 나라를 넘어 지구마을에 사는 목숨들이 제 목숨대로 살며 춤추고 떠들고 아픔과 기쁨을 나눈다면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어느새 성큼 다가오리라.(2016년 8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