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사드가 들어오던 그날 김천촛불집회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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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6.
사드배치철회 김천시민촛불집회 ●제249회●
아침에 일어나서 맨 처음 컴퓨터를 확인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밴드에 올라온 글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단톡방에 엄청나게 많은 소식이 들어와 있는데 그 중 ‘사드 들어왔습니다’ 글에 가슴이 덜컹해서 열어보았다. 이후 한 시간 넘도록 읽으면서 잠들었던 내가 너무도 미안하고 원망스러웠다. 늦게라도 가야겠다 싶어 급히 아침을 하고 출발했다.

도착하니 사람들이 울먹였다. 힘껏 지켰으나 8000명의 경찰을 당해내지 못하고 밀려나거나 들려나온 것을 너무 미안해했다. 집에 잠깐 들르러 갔다가 경찰 봉쇄에 못 들어온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못 들어왔다고,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소성리 집집마다 앞에 경찰이 배치되어 어르신들을 못 나오게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월명리도 사람들을 못 나오게 경찰차가 배치되어 어떤 주민은 가방을 다 두고 운동하러 간다며 간신히 빠져나오기도 했단다.

조금 있으니 기자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작전이 있을 줄은 알았는데 밤에 할 줄은 몰랐다.”는 기자도 있었다. 어젯밤을 지키며 경찰의 방해 속에서도 꿋꿋이 취재를 했던 것은 뉴스민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JTBC를 비롯 MBC. KBS, TBC, MBN, YTN 등이 왔다.

간간이 독이 오른 마을 주민이 경찰에게 퍼부어대고 있는 데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게 좀 걱정이 되었다. 저 끝난 상황에서 주민들의 악다구니만 취재한다는 건 또 다른 왜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자님들 여기서 찍지 마시고 저 위로 올라가서 취재해 보세요.”했더니 한 기자가
“올라가면 잡혀갑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바람에 머리가 확 돌아 흥분했다.
“그럼 뭘 찍는단 말이예요? 당신들도 공범이잖아요! 국민들에게 찬성 여론이 들도록 보도했잖아요!”
꼭 뉴스에 사드 관련 보도가 나오면 앞뒤로 북핵을 배치하고 무시무시한 화면을 내보내는 데에 대한 평소 불만이 폭발했던 것이다.
새 정부가 언론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언론 또한 진실 보도를 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북한 핵이나 미국의 패악질에 대해 정확하게 보도할 때 국민도 거짓 안보에 속지 않게 되고, 그럴 때 사드를 비롯한 통일 안보 문제가 풀리리라 본다.

김덕기 자문위원과 김동기 YMCA 이사, 여찬동님을 비롯 여러 사람들이 가볍고 큰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해서 걱정을 했다. 박희주 공동위원장은 잡혀갔다고 했다.

점심 무렵 병원에 갔던 평화지킴이가 팔에 기브스를 하고 왔다.
대다수가 경찰이 겹겹으로 에워싸고 밀어내면서 팔을 꺾거나 군화발로 차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그 폭력적인 장면을 고스란히 놓치고 뒤늦게나마 욕으로 풀고 있는 촌 할머니들을 열심히 취재해서 어떻게 보도할지 다시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1시에 월요평화미사가 있고, 2시에 수요 연대집회가 있다. 오늘 공교롭게도 원불교의 대각개교절, 이 좋은 날에 우리 정부는 재를 뿌렸다. 이때를 전후해서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프랑스 24, 영국 가디언지, 민중의 소리,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왔다.

원래 진밭교에서 미사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길 한가운데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소식을 듣고 대구대교구 신부들도 몇 분 오셨다. 새벽에 이강태 신부가 미사하는 도중 경찰이 제대와 미사도구들을 뺏고 미사를 중단시킨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원불교 교무들이 기도하는 것도 여러 명이 에워싸 들어냈다.
롯데 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요셉의 집을 운영하는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들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 어젯밤 같이 있다가 새벽 한 시쯤 돌아갔는데 이 난리가 났지만 못 들어오고 애만 태웠다고 했다. 부산에서 오신 수녀들이 “사드가 들어오면 어디를 쏘느냐?”는 질문에 예수 십자가상 바로 앞인가 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영선 신부 집전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조금 늦게 문규현 신부가 전주에서 달려와서 함께 하셨다. 30여 명의 신자들이 앞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그 옆과 뒤로 원불교 교무들이 법복을 갖추고 자리하고, 뒤에는 일반인이 앉아 함께 했다.

하는 도중에 장비차가 하나 들어와 조금 긴장되었지만 미사는 끝까지 진행되었다. 미사가 끝난 뒤 보니 장비차는 돌아나가고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무대가 따로 있지만 지금 우리 뒤로 빠져나가려던 경찰차들을 잡아두었기 때문에 비워둘 수가 없어서다. 연행된 박희주 공동위원장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경찰버스도 다른 차량도 들어가거나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황이다.

집회가 시작되었다. 박석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이 사회를 보았다. 발언하러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 미국사드 반입에 분노하기도 했고, 막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데 대한 반성도 했다. 대선기간엔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강해윤 교무는 “사드는 불법이고, 모든 것이 불법이다. 그 뒤에 미국이 있다. 광화문에 가서 미국놈들 코앞에서 한국 주권이 우리에게 있다고 외치겠다.”고 비장하게 발언했다.

우리 김천 남면에 살고 있는 이봉도님이 화가 난다 했다.
“우리를 국민으로 보지 않고 작전 대상으로 보고,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나는 사드부지에서 5㎞ 지점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나한테 허락받지 않고, 주민들을 마음대로 밀어내고 끌고 가서 다치게 하는가? 한국 경찰이 맞나? 미국을 위한 사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고 우리 국민을 잡아갔다.
평화롭게 마누라랑 새끼들이랑 살고 싶은 게 욕심인가? 국민 사표내고 싶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놈이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우리 땅을 지키려 한다.
북한 핵보다 경찰이 더 무섭고 미국 사드가 더 무섭다.“
“미국놈은 미국으로! 소성리는 우리에게!”

소성리 할머니.
“소성리에 시집 와 50년 살았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억울하고 분해서 할 말이 없다. 눈물밖에 나지 않는다.(끝내 우셨다.) 너무나 분하다. 도와 주십시오!”

소성리 노인회장.
“원불교도이다. 매일 저녁 기도만 했다. 어제 12시 들어와 자고 있는데 비상이 울렸다. 시계는 2시쯤. 부랴부랴 쫓아 나왔는데 경찰들이 온 도로를 점령하여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골짜기에 한국 경찰을 다 모아놓고 그것도 한밤중에 사드 통과시키고 이게 무슨 놈의 짓인가? 국민을 보호해 주고 살려야 하는데 주민을 떠밀어내고 정말 눈물이 난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차가 다 막혀 출근할 수도 없었다.
한민구 이 ×× 어디 경찰 써먹을 데가 없어 이런 데 써 먹어?“

“사드 싸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더 크게 단결하고 힘을 모아 반드시 철거시키자. 더 큰 결의로 준비하자”는 사회자의 말이 용기를 주었다.

‘소성리 엄마’, ‘사드 아리랑’을 불렀다.
“트럼프야! 사드 엿 바꿔줄게. 엿 먹어라!”
구호를 하고 행진을 시작했다. 오늘 롯데골프장 100m앞까지 허가가 났단다. 원불교 교무님들, 천주교 수녀님들이 앞장서 행진을 하러 나갔지만 김천 시민들은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박희주 공동위원장이 풀려날 때까지 경찰차들이 못 나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유선철 공동위원장이 나와 울먹이면서 “못 막아서 미안하다”고 해서 우리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싸움에 이기고 지는 일은 많다. 늘 이길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제 장기전에 들어간다.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

드디어 박희주 공동위원장이 구미경찰서에서 풀려나 돌아왔다. 우리의 박희주 의원! 열렬한 박수로 맞았다. 김천 시민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길을 터주었다. 경찰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벌써 6시가 다 되었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평화광장에 나갔다.
“오늘 사람들이 좀 늘려나? 이런 일을 겪었으니…” 하는 남편의 말에
“오히려 줄지 않을까 걱정이다.”했더니
“이제 줄 사람은 다 줄었어.” 했다.
나중에 보니 는 것 같지는 않지만 줄지는 않은 걸 보니 김천 시민들도 어지간히 내공이 생긴 것 같다.

오늘은 설동현님이 첫 사회를 보는 날이다. 일어서 묵념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오늘 소성리에서 있었던 일을 담은 영상을 보고,
“투쟁은 즐겁게 해야 질기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오늘은 각종 문화공연은 없다. 투쟁 결의를 담는 날로 하겠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투쟁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핵심에 있는 분들이다.”며 사회자가 우리 공동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한 사람씩 결의를 다지는 말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뵐 낯이 없다. 정말 죄송하다. 금일 4시경과 6시경 두 차례나 사드 장비가 들어갔다. 환경영향평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장비가 반입되는 무도한 행위를 스스름 없이 저지르고 있다. 이는 불법이고 무효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철거를 하면 된다. 기반 공사를 못하게 지연시킬 것이다. 장비를 철거시키고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된다.”
유선철 공동위원장이 말하고, 연행되었던 박희주 공동위원장과 부상당한 세 사람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속이 상한대로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시간에 함께 달려와 주셔 투쟁하신 시민 여러분 고맙다. 들어오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린 분들 마음 이해한다.
어떻게 대항할 수 없었다. 사드가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차로 들어갈 때는 보기 싫어 등을 돌렸다.
그런다고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원불교는 끝까지 그들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성주 초전을 다시 찾겠다. 이제 소성리가 아니라 미 대사관 앞에 가서 민변과 함께 그동안 모든 것을 되찾아 오겠다. 끝까지 저희들 믿고 함께 해주셨으면 고맙겠다.”는 최용정 교무.

김대성 공동위원장.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밤이나 새벽에 기습적 배치하리라 알고 있었으나 대선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 방심했다. 확실하게 법적 투쟁, 정치인 압박 투쟁, 몸싸움 투쟁을 착실하게 준비하여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다함께 끝까지 승리하는 그날까지 투쟁하자.”

박태정 부위원장.
“많이 놀라시고 탄식을 하였죠? 동네 몇 분과 갔다가 11시 반쯤 집에 와 눈 좀 붙이니까 1시쯤 연락이 와서 동민들 소집하라 하고 현장에 갔다. 바로 길이 차단되고 그 이후는 들어오지 못했다.
경찰이 끌어내리는 것 처음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회되는 날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이 가주시기를 바란다.”

건강을 되찾았던 박희주 공동위원장의 목소리가 다시 갔다.
“현행범으로 조사받고 석방되었다. 쪽 팔렸다. 사드장비 몰고 지나가던 흑인이 웃는 모습, 경찰이 웃는 모습에 가슴 아팠다. 대한민국 경찰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 아니라 대한미국의 개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정신 차리라고.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 계신 분들의 역할만 해 달라. 그러면 시간이 길어질지언정 막을 수 있다. 여러분의 역할은 이 자리에 내가 아니면 촛불을 들 수 없다는 강한 생각을 가지고 사드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이 더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여기 뛰어노는 아이들만큼은 대한민국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힘들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싸워보자.”

김종경 공동위원장.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없는 상황을 모르지 않는 미국이 이렇게 비신사적으로 도둑질하듯이 밤에 기습적으로 사드를 반입했다.
돌이켜보면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국방부가 국민의 반대와 저항을 물리치고 배치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허탈해하지 말자. 아직 절차가 남았다. 대선 이후 행정, 법적 절차 피할 수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드배치, 새 정부 이후엔 썩은 정권처럼 쉽게 국민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 없다.
차기 정부에선 사드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철저한 검증절차를 거쳐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저들이 사드레이다, 발사대, 요격용 미사일을 아무리 갖다놓으려 한들 그것을 운영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우리가 여기를 지키는 한은 반드시 승리하는 그날을 맞이할 것이다.”

최현정 부위원장은 손가락이 삐었던 것 같다.
“상황이 끝나고 아이들이 있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할 수 없이 돌아왔다. 엄마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해주었다. 저도 평소 욕을 안 하고 살았는데 욕을 엄청 많이 알고 있더라.(웃음) 머리카락도 뜯기고(울먹거려서 “울지 마”하는 격려의 소리도 있었다.)
젊은 엄마들이 소성리에도 많이 가고 광장에 나올 수 있도록 저도 더 열심히 하겠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투쟁!”

“내일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이철우가 온다. 시간 되시는 분은 광장에 11시에 나와 달라. 사드반대 깃발 가지고 나와 사드반대를 외치자.”고 박희주 공동위원장이 덧붙였다.

설동현님이
“오늘 우리는 보았다. 예전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택 대추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군홧발로 짓이기고 국민을 개 쓰레기로 취급하는 대한미국의 몽둥이를 보았다. 대책위의 사회 보는 두 분과 여찬동씨가 다쳤다. 그 두 분을 모시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덕기 자문위원이 목발을 짚고 나왔다.
“집회를 마치고 월명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소성리로 갔는데 1분만 늦었어도 못 갈 뻔 했다. 도착시점에 모든 길을 막아버렸다.
80: 8000, 너무나 그들의 벽은 두터웠다. 그러나 사드를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투쟁했다. 역량이 부족해서 사드장비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미국의 충실한 개, 그 중 한 명에게 정강이를 걷어 차였다. 미안하고 입원할 여건이 안 되어 반 기브스를 하고 소성리로 돌아왔다. 미국의 충실한 개는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다. 너희들은 미국의 충실한 개로 열심히 살아라. 우리는 사드를 물리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사드는 한반도에 필요 없는, 고철덩어리, 무용지물. 이 사드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투쟁의지를 꺾지 않겠다,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모멸감도 느꼈다. 종교탄압도 보았다.
우리 주권을 빼앗기는 이 마당에 가만있어서 되겠는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정의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다시 시작하자.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재기해서 사드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자.”

사정상 사회를 그만 둔 김동기 YMCA 이사는 목에 기브스를 했다.
“전에 내 몸을 차바퀴 밑에 던져서라도 막겠다고 했다. 어제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했다. 직감이란 게 있다. 올 것이 왔구나. 한 시쯤 비상이 걸렸다 해서 차로 막았다. 방패 들고 뛰어오는 것을 보니 들어오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비상연락을 받았지만 골목을 경찰 벽을 뚫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고, 동네 자체에서부터 차단이 되었다. 스크럼을 짜기 전에 들려나갔다. 역부족이었다.
차 소리에 무조건 막아야겠다, 네 겹을 뚫고 들어가니 차는 다 들어가고 없었다. 팔이 꺾여서 들려나왔고 앞에 카메라는 열심히 채증하고 있었다. 눈물이 많이 나왔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중에 가슴 쪽에 통증이 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야죠. 여러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오 흩뜨리지 말고 같이 갑시다!”
“결사항전 결사투쟁 사드배치 막아내자!”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억지로 외쳤다.

설동현 사회자.
“‘사드가 들어온 길이 있다면 나가는 길이 있다. 미국으로 되돌려보내자.’고 교무님이 말했다. 힘차게 투쟁해서 이 사드 몰아내자. 새벽 야음을 틈타서 기습적으로 들어왔다. 떳떳하다면 대낮에 떳떳하게 갖고 올 것이지 이게 뭐냐?”
“미국 사드 미국으로!”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장재호 사무국장이 나와 “사드철회의 마음을 담아서 함께 투쟁한 여러분이 있어 이 투쟁 멈출 수 없다. 장비 몇 대 들여보냈지만 싸움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투쟁에 승리하고 스스로 촛불을 끌 때 그때만이 투쟁을 멈추는 것이다.”면서 토요일 서울 갈 것인가(많은 국민에게 알린다) 소성리 갈 것인가(상황이 엄중하다)를 물었다.

권민석님이 “잠이 안 온다. 차 38대가 들어갔다. 사드 다 들어갔다. 서울에 가서 사드철회를 외치자.”고 의견을 말했더니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 상경해서 국민에게 알려내고 힘차게 투쟁하자며 천막에서 신청을 받겠다고 했고, 내일 11시 역 광장에서 홍보 피켓팅을 하자고 했다.

구호를 외치고 오늘 집회를 마쳤다. 이제 사드는 배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를 떠난 것 같다. 남북간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미국에 대해 주권국가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같이 풀릴 것 같다. 길고 험한 길,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접고 긴 싸움의 길에 오른다. 그 길이 평화와 민주, 정의로 가는 길이 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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