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 잡기 위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추진, 내년 3월 결실
“우리나라는 35년간 일제의 잔악하고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독립운동을 펼쳤어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독립의 역사를 자축하기 위한 독립기념관은 있지만 식민지 통치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고발하기 위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아직 없는 실정이죠”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인근에 위치한 민족문제연구소 내에는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이하·위원회)’라는 또 하나의 단체가 존재한다. 위원회는 일제시대 일본 정부가 저지른 만행을 알리기 위한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현재 이이화 위원장(79)을 필두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57), 강동민 사업팀장(39) 등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보통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독립을 한 국가는 과거의 슬픈 역사를 추모하기 위해 박물관을 세우기 마련이죠.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세워야 하는 박물관은 두 종류가 있어요. 독립기념관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이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독립기념관만 존재하죠”
우리나라에는 현재 독립투쟁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독립기념관은 있지만 35년간의 식민 통치를 보여주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군강제위안부, 제암리학살사건 등 식민지 시절에 일어났던 개별 사건만을 다루거나 대형 박물관의 한 테마로 일제강점기 상황을 알리는 데 그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의 호화스러운 행적부터 최하층 서민에 대한 고통스런 수탈까지 함께 보여주는 박물관이 없어요. 우리나라 현실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반드시 필요해요. 바로 일본의 극우세력 때문이죠. 그들은 끊임없는 망언을 통해 자신들의 식민지배가 긍정적이었다 주장, 소위 ‘프로파간다(목적성을 가진 선전)’를 대중들에게 계속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 일본 극우세력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벌어진 학살, 착취, 수탈을 모두 무시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시혜론’ 등을 내놓고 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일제강정기 시절 일본이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증명해줄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벌써 70년이 훌쩍 지났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고령으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죠. 박물관을 하루빨리 개장해서 피해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유물들을 수집하고 관리, 보존해야 되요”
시민의 힘 모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설 초읽기 돌입, 내년 3월 개관 예정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설립된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는 지난 2011년 2월 설립됐다.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박물관 건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한 인물이다.
“위원회는 지난 5년 동안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시민의 힘으로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어요. 지난 2013년부터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민들의 모금을 받기 시작했죠. 그 외에 홍보 등을 위해 여러 이벤트성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어요”
위원회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지난 2월 박물관이 들어설 건물과 계약을 체결했다. 오는 11월 잔금을 치르고 리모델링 공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3월이면 박물관 개장이 가능하다는 게 박 실장의 설명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 예정지는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 인근이에요. 박물관 예정지 인근에는 용산 미군기지, 효창공원, 남산 등 수많은 일제강점기 역사 유적지가 있죠. 나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그 지역을 박물관 예정지로 선택하게 됐어요”
용산 미군기지는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 머물던 일본군들의 병영으로 쓰였다.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범 김구 등이 잠들어 있다. 남산의 경우 1926년 이전까지 조선총독부가 위치해 있었다.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활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현재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도 위탁운영하고 있죠. 또 향후 각 지역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을 전국적으로 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일제 만행 세상에 알릴 식민지역사박물관, 역사적 상징성 가진 용산구 안착
위원회는 식민지 역사박물관으로 쓸 건물을 구입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정된 재원으로 박물관으로 이용할 만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적 상징성까지 감안해야 하다 보니 건물을 구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부동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구, 종로구, 용산구 등 옛 한양도성 인근 지역에서는 50억원으로 연면적 500규모 빌딩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하지만 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포기를 할 수는 없었죠”
강 팀장은 빌딩을 구입하기 위해 2015년부터 1년 반 동안 140군데가 넘는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원빌딩 등 부동산 컨설팅 업체와 이들 부동산들로부터 받은 약 2만건의 매물 중 조건에 부합하는 건물 80곳을 찾아냈다. 직접 찾아간 곳 만해도 50곳이 넘었다.
“결국 역사적 상징성을 포기하고 은평구, 강서구 등 서울 외곽지역을 알아보려고 시작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어요. 51억원에 빌딩을 매매하겠다는 건물주가 나타났죠. 정말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했어요”
위원회는 박물관 건립 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일을 겪었다. 일본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박물관 건립에 일본인이 직접 자금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은 위원회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식민지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았어요. 그 중 일본에서 후원금 약 500만엔(한화 약 5000만원)을 보내줬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일본 내 4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500명이 넘는 일본인들로부터 모금을 실시해 보내준거죠”
내년 3월 개장할 예정인 식민지 역사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가 그동안 수집한 약 4만건의 유물과 수십만건의 자료들이 수장·전시될 예정이다. 또 세미나실을 꾸며 박물관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경엽기자(yeab123@skyedaily.com)
<2017-05-20> 스카이데일리
☞기사원문: “극악무도한 일제의 추악한 만행 세상에 알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