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스프레이 테러로 되돌아본 연구소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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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4월 23일 오전 1시경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연구소 3층 사무실 출입문과 현판 등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달아났다. CCTV를 통해 확인해 보니 이 남성은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약 2분간 스프레이를 뿌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서슴없이 스프레이를 뿌린 것을 보니 적어도 한차례 이상은 사전 답사를 한 것 같은 모습이다. 일명 ‘스프레이 테러’가 발생한 것인데 최초 발견자는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나온 한 상근자였다. 이튿날 경찰에 신고하고 동시에 언론에도 널리 알렸다. 언론이 크게 보도해준 덕분인지 관내 동대문경찰서는 신속히 수사에 들어갔다.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감식반은 물론 동대문경찰서장도 직접 연구소를 방문해 범인 검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범인 검거는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번 달은 스프레이 테러를 계기로 그동안 연구소 겪었던 크고 작은 수난사를 잠시 되돌아보고자 한다.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수구세력(뉴라이트, 어버이연합 등)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일 것이다. 연구소는 그해 7월 1일 <만화 박정희>를 출간하며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 행각을 고발했고 이어서 8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하여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렇듯 박정희를 비롯한 주요 친일파들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기정사실화하자 수구세력의 반격이 곧바로 이어졌다.

매일 사무실로 전화하여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의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 나아가 국민행동본부, 자유수호국민운동, 대한민국 HID청년동지회, 나라사랑어머니연합, 나라사랑시민연대 등 극우단체들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청산과 아무 상관없는 조선일보 반대운동, 박정희기념관 건립저지, 여중생 사망 추모 촛불집회 등에 앞장서고 반미운동의 중심에 서 있으며, 친북인사들이 이끄는 좌파단체의 총본부”라며 해체를 주장하더니 9월부터 12월까지 연구소 사무실 앞에 몇 달씩 집회신고를 내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어버이연합에 소속된 수백 명의 노인들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겠다면서 연구소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고 급기야 이를 말리던 건물 관리인을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완력으로는 경찰을 밀어내지 못하고 해산하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분이 안 풀렸던지 건물 현관에 있던 연구소 현판을 파손하고 준비해 온 계란 수십 개를 건물에 던지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이후 10명 안팎의 ‘열성파’들은 확성기를 가져와 볼륨을 최대로 올려놓고 소음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민족말살연구소’, ‘패륜아’ ‘빨갱이’라는 소리를 몇 시간씩 며칠간 해대니 연구소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분들에게도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집회 주도자 몇몇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그때서야 집회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듬해인 2010년, 그들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다. ‘친북반국가행위자인명사전’ 이른바 ‘친북인명사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누가 봐도 <친일인명사전>을 물타기하고 연구소 활동을 종북 프레임으로 덧씌우려는 시도였다. ‘친북인명사전’이라는 해괴한 발상을 해낸 이는 바로 고영주 변호사였다. 다행히 급조하기에도 부족한 실력이었던지 ‘친북인명사전’은 발간되지 못하고 예비 명단만 발표하고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그 기발한 발상 덕택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고영주 변호사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앉혔다. 이후 기고만장해진 고영주 이사장은 2013년 1월 수구단체들이 모인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18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발언했고 최근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검찰이 어떤 결론이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이렇게 2005년도에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욕먹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2012년 다큐 〈백년전쟁〉 제작 이후에도 전화와 이따금 편지를 통한 협박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SNS에는 연구소를 폭파하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부르는 모습의 만화가 떠돌아다녔고, 2013년 5월에는 ‘일베’ 소속 고교생들이 연구소 홈페이지를 해킹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이 지속되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저들이 얼마나 시민사회단체들을 옥죄였는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연구소 또한 교육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고 국정원 비선 조직(알파팀)이 동향을 파악했던 30여 개 단체 중 하나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연구소에 대한 각종 불이익과 부당한 압력은 직접적으로는 연구소를 후원하는 회원들뿐 아니라 잠재적 지지자인 일반 시민들에 대한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러나 무도하고 몰상식이 판치는 그 시간에도 회원들은 결코 움츠러들지 않고 늘 연구소를 지켜주었다. 끝도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연구소가 저들이 가해온 온갖 공격과 협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보다 더 길게 늘어서서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던 회원들과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방학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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