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20개월 ‘야탑투쟁’, 적폐청산 투쟁으로 승화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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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경기동부지부장 허남해 / 정리 : 방학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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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도시 광주가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비롯해 진보적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면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시립병원 건립 등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성남시가 주도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야흐로 성남이 진보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이곳 성남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지하철 야탑역 광장에서 허남해 경기동부지부장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만 20개월 동안 이른바 ‘야탑투쟁’을 벌여 왔다. 5월 12일 저녁 7시에 성남동 복지회관에서 허남해 지부장을 비롯해 야탑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회원들 몇몇과 함께 뒷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부 첫 업무지시로 국정 역사교과서 정책을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문 : 야탑투쟁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답 : 2015년 9월경 사드(THAAD) 배치가 예견되자 연구소 회원이면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이신 서덕석 목사와 김종국 회원 두 분이 야탑역, 모란역, 수내역 등 성남 시내에 있는 거의 모든 지하철 역사를 순회하면서 주로 퇴근 시간에 맞춰 피켓 시위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차차 서명대도 설치하고 작은 앰프도 마련하여 진행하던 차에 10월 12일 국정교과서 국정화고시가 발표되자 분위기가 심각해졌지요. 광복회 성남지회장이었던 이용위 회원, 이순선 회원, 박종완 부지부장, 성백만 회원, 신승학 회원 등 여러 회원들이 점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문 : 야탑역 광장에 천막까지 설치하셨군요. 천막 설치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답 : 국정화고시를 강행한 것으로 보고 우리도 장기전으로 돌입하기로 했습니다. 피켓 등 집회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아예 야탑역 한켠에 천막을 설치하기에 이르렀지요. 처음에는 이용위 회원이 천막을 제공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아예 천막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심재상 회원과 장건 회원이 운영하는 공익재단 ‘성남이로운재단’이 반반씩 찬조해 마련했습니다.

 

문 : 노조나 시민단체 등 상근자들이 있는 조직도 한 달 넘게 야외에서 투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직업 활동가도 아닌 분들이 20개월 동안 장기간 투쟁을 벌여 오셨는데요. 야탑투쟁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셨나요?

답 : 박근혜 탄핵이 확정된 올해 3월 10일에 드디어 야탑투쟁을 마무리했습니다. 2015년 사드 반대로 시작했지만 국정교과서 고시 발표, 한일 ‘위안부’ 협상, 2016년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식 개최, 백남기 농민 사망, 최순실국정농단 게이트와 촛불집회 등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기에 도저히 야탑투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문 : 야탑투쟁 때 시민들 반응은 어떠했나요?

답 : 젊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우리들의 활동을 매도하셨어요. 거의 무조건적인 반대였지요. 그래서 저희들이 반대하시기 전에 한번 사드 등 시국 현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빨갱이’라는 욕설은 기본이고 “일당 얼마씩 받고 이런 일 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었구요. 왜 피켓을 들고 나와 있는지 도대체 알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경북 의성이 고향인 임헌영 소장의 평소 지론이 떠오른다. “수구정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념 자체도 모른다. 그들은 보수이념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즉 이념이 아니라 무지가 문제이다.”
야탑투쟁을 처음 시작한 김종국 회원의 말이다.
“매일 저녁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혹시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자주 했어요. 왜냐하면 말도 안되는 억지로 우리를 욕하고 비난하면 제가 참지 못하고 욱하는 마음에 주먹이 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러한 불상사는 없었으니 야탑투쟁 기간 동안 인격수양이 되었습니다.”

문 : 투쟁 기간에 계속 봉변만 당하셨나요?

답 :물론 격려도 많이 받았지요. 이재명 성남시장도 직접 찾아와 격려해 주었습니다. 시민들이 커피, 순대, 과일을 갖다 주었는데 심지어 어떤 분은 한밤중에 조용히 술 한 병 들고 천막으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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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도 힘들 텐데 기꺼이 서명해 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특히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저지넷)가 국정화 반대 서명을 받은 숫자가 인터넷 서명을 포함해 20만 명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성남시는 종이 서명으로만 약 1만 명을 받아서 저지넷에 보냈습니다. 하루 200명꼴로 받은 것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시민들의 호응이 좋았는데 확연하게 호의적으로 바뀌고 노인들의 공격과 비난도 눈에 띄게 잦아들었던 시점이 있었는데요. 그때가 바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작년 12월 9일입니다.
회원들이 설치한 야탑역 천막은 단순히 집회 물품 보관소 역할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백남기 농민 분향소로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자 경찰들이 집회 확산을 막기 위해 강제 부검을 시도하고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분향소를 공권력으로 폐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야탑역 광장에는 지부 회원들이 설치한 천막도 이미 있었고 집회신고 기간도 넉넉히 잡아놓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백남기 농민 분향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농민운동을 했고 성남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김준기 전 신구대 교수가 백남기 농민 분향소 설치를 간곡히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근혜 퇴진촛불이 계속되는 동안 경기동부지부가 야탑광장에 장기 집회 신고를 해놓은 덕분에 안정적으로 집회장소를 확보하고 퇴진성남본부와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가운데서 촛불집회를 계속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에 의의가 컸다.
한편 천막의 또 다른 용도가 있었는데 바로 노숙인들의 ‘비공식’ 야간 쉼터였다고 한다. 지부 회원들의 사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마련한 집회 물품들이 보관된 천막을 매일 밤 노숙인들의 쉼터로 내어주는 넉넉한 품과 여유. 역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낙관주의자들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몇 번 노숙인들이 자고간 사이 물건이 일부 없어지기도 했지만 회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문 : 이제 야탑투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는데 향후 지부 사업계획은 무엇인지요?

답 : 2016년 국회의원 선거 탓에 한 달 가량 쉰 것을 빼곤 매일 야탑투쟁을 진행하면서 최소 5~6명의 회원들이 항상 동참해 주었습니다. 야탑투쟁에 참가한 모든 지부 회원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선 그동안의 야탑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백서 제작을 최우선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료수집은 지부장인 제가 맡아서 거의 완료된 상태이니 나중에 본부에서 편집을 도와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지부는 야탑투쟁을 벌이면서도 매주 수요일 공부모임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친일문제를 비롯한 역사는 물론이고 성남지역 노동운동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조촐하게나마 노동열사 분들에 대한 추모모임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공부모임에 많이 참석하여 심도깊은 역사공부를 통해 역사의식과 실천력을 높여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월 30일에 는 고려피혁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며 분신한 최윤범 열사(1960~1988)의 28주기 추모식을 서덕석 목사의 열린교회에서 진행하면서 임헌영 소장님의 초청 강연도 겸했습니다.
또한 우리 지부가 새로 확인한 성남·광주지역 독립운동사적지가 20여 곳이 됩니다. 독립기념관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사적지입니다. 본부와 함께 검증작업을 거쳐 공식 사적지로 추가했으면 합니다. 이 사업을 위해 초대 고양파주지부장을 지낸 이재준 경기도의원이 발의한 ‘경기도 항일운동 유적발굴보존에 관한 조례’를 먼저 검토하겠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장기적으로 성남광주지역의 독립과 민주 운동 유적지에 관한 답사 안내서를 발간하려고 합니다. 최근 경기도 광주에서 평화의소녀상 건립 활동이 시작되고 있는데 이 운동에도 지부 차원에서 관심을 쏟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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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거의 마무될 즈음 성남에서 폐현수막 천을 재활용하여 쓰레기봉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두레’를 운영하는 유연식 회원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동안 유 회원은 직장 관계로 야탑투쟁에 자주 동참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순대, 떡볶이 등을 사오거나 저녁 식사를 대접해 왔다고 한다. “성남·광주를 포함해서 우리 지부에 3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야탑투쟁 20개월간 나오신 분들은 따지고 보면 극히 적은 숫자입니다. 따라서 여기 계신 분들처럼 결의가 높은 분들이 구호 제창과 유인물 배포뿐 아니라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실천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촛불을 들고 기꺼이 광장에 나온 분들의 요청이기도 할 겁니다.”
정확한 지적이다. 가정주부나 업무에 지친 회사원들인 회원들이 매일 저녁 퇴근 시간에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한 분들이 그러한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분들이 크게 부담 갖지 않고 참여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마당을 깔아주는 것이 바로 지부 집행부의 역할이리라. 그것은 비단 연구소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의 숙제임이 분명하다.
20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그간의 노고를 자축하고 더 커다란 계획을 고민하면서 모란역 부근 허름한 식당으로 옮겼다. 이 자리에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이 동석했다. 장병화 회장은 2015년 7월부터 성남시 산하의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직에 있는 관계로 그동안 야탑투쟁을 격려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 투쟁이 일단락되었으니 격려차 찾아온 것이다. 순대국을 앞에 놓고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20개월 야탑투쟁을 자축하는 지부 회원들은 ‘적폐청산’을 화두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밤이 깊어갈수록 야탑투쟁이 적폐청산 투쟁으로 승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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