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36년 전 맺지 못한 인연, 친일청산운동으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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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 천안신부공원에 위치한 임종국선생 흉상 앞에서. 가운데가 필자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전에 살고 있는 대전민중의꿈 대표 김창근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시겠지요? 저는 선생님을 잘 압니다. 그것은 36년 전 선생님과 제가 천안에서 함께 하게 된 우연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천안 청수동과 풍세를 지나 광덕에 가면 호두가 많이 나는 광덕산이 있었지요. 그 산자락 공원묘원에 선생님이 모셔져 있더군요. 무려 36년이 지나 선생님의 영전에 절을 올리면서 생전에 뵙지 못한 회한과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엄혹한 시절 선생님과의 인연을 끝내 맺지 못했지만, 너무 늦게 찾아뵌 것을 용서해 주실 수 있는지요?

1980년의 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혼란의 시기였고, 저는 당시 천안경찰서 남부파출소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공직에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친일청산과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민족주의자의 길을 걷던 20대의 열혈청년이었지요.

당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심취해 있던 저는 친일청산을 위해 저술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을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소문과 저술활동에 전념하시는 분을, 아무런 소개도 없이 경찰관이 불쑥 찾아가는 게 결례일 것 같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서재인 ‘요산재’가 있던 삼룡동은 마침 제가 담당한 지역이라서 호구조사를 핑계로 찾을 수도 있었지만, 호구조사라는 것이 실제로는 주민 사찰하는 수단이어서 그 또한 선생님께 불편을 드릴 것 같아 하지 못하였지요. 그리고 1981년 7월 ‘아람회사건’으로 구속되어 선생님과의 만남을 끝내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에 4년 전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인연을 맺었고, 올해 대전지부 운영위원까지 되었습니다. 해방 후 72년이 지났어도 친일과 외세가 척결되지 않아 민족정기가 올바로 서지 않고 있으며, 이 나라는 아직도 친일・친미 인사들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어 민주주의가 퇴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친일과 친미야말로 우리 민족이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입니다.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시던 민주주의 실현과 친일청산은 작년 11월부터 진행되어온 촛불혁명으로 시작해 이제 선거혁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뜻깊은 대통령 선거일을 맞이해 정권교체의 열망을 바라면서 36년 전 선생님을 뵙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습니다. 선생님의 과업을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와 사회변혁세력이 함께 이루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외롭지 않게 성과물을 가지고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17년 5월 9일 대전에서 김창근 올림

※ 아람회 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 진압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한 이들을 불법 체포·고문해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기소한 용공조작 사건이다. 피고인 5명 중 일부는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으나 198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5월 재심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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