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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총사령관 후손이 이끈 근현대사기념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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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개관 1주년 맞은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
“평화통일로 주제 확대…정부 차원 기념관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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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장이 25일 서울 동대문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5.2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묘지와 맞닿아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이 이달로 개관 1주년을 맞았다. 동학혁명부터 3·1운동 등 항일독립운동,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민중의 역사를 집중 조명하는 국내 유일한 공공기념관이다. 서울시와 강북구가 의기투합한 결실이기도 하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은 25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근현대사기념관을 독립운동운동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까지 아우르는 역사공간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을 초석으로 한 중앙정부 차원의 항일독립운동 기념관 건립도 제언했다.>

평화통일의 통합정신은 사실 독립운동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다.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반공 성향이던 백범 김구(1876~1949)는 의열투쟁을 주도하며 사회주의에도 개방적이었던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손을 잡았다. 약산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끌던 우사 김규식(1881~1950)은 임시정부 부주석으로 합류했다. 이들이 뭉친 1940년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전성기를 맞았다. 독립운동가들은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에도, 심지어 6·25전쟁 후 살벌한 남북대립의 시대에도 분단체제를 반대했다. 이 전통은 군사독재를 반대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 개정 헌법 제4조에 ‘평화통일 추진’ 조항을 명시하는데 이른다.

근현대사기념관이 자리잡은 수유동 역시 독립운동과 민주화·통일운동이 함께 숨쉬는 곳이다. 손병희 선생, 이준 열사 등 순국선열 16위 묘역과 국립 4·19묘지는 물론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한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1918~1994)가 20년간 말년을 보낸 가옥 ‘통일의 집’이 있다.

이준식 관장은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이라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결실을 맺었다. 해방 후에는 분단되면 틀림없이 전쟁이 날 것을 예상하고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며 “2019년 3·1운동·대한민국 100주년 때도 그러한 통일의 정신을 기리는 방향으로 기념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좀더 폭넓은 콘텐츠를 담을 수 있도록 근현대사기념관의 하드웨어적 개선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동학부터 4·19까지 100년 가까운 역사를 다루기에는 전시공간이 너무 비좁다. 이 관장은 “공간이 협소해 처음 생각만큼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서울시, 강북구와 함께 좀더 규모있는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시설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게 이 관장의 생각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이 절호의 기회다.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지만 독립운동보다는 광복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임시정부기념관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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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의 전경(강북구 제공)© News1

이준식 관장 본인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1888~1957)이 그의 외할아버지다. 한살 때 운명해 기억은 없지만 지청천 장군은 뒤늦게 얻은 외손자에게 각별했다고 한다. 장군의 딸이자 이 관장의 어머니인 지복영 여사(1920~2007)도 광복군 출신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 그가 특별히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였다. 어렸을 때는 “다 지난 일이고 독립운동이 그렇게 엄청난 일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전공한 이 관장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독립운동은 남다른 의지와 각오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희생된 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고 했다. 이후 그는 참여정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정책위원장으로 일했다.

‘친일파는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는 말대로 비참한 삶을 사는 후손들도 많다. 이 관장 자신은 “후손 중 그나마 예우를 받은 1%에 속한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후손에 대한 예우보다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일 옹호 주장이 공공연해지는 최근 몇년간의 모습은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거듭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이 관장은 “친일 청산을 외치는 사람들을 종북이라고 몰아세우는 집단을 보면 섬뜩하다. 해방 후 친일파들의 행태와 똑같기 때문”이라며 “70년이 지난 후에도 되풀이되는 걸보면 ‘친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고 했다.

특히 이제는 친일청산에 국가보다 시민이 나설 때다. 이 관장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친일청산을 통해 적어도 친일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nevermind@

<2017-05-28> 뉴스1

☞기사원문: 광복군 총사령관 후손이 이끈 근현대사기념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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