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인, 기념해야 할 존재인가?
친일문학상이라는 환부
이명원 /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친일문학상과 관련된 논의는 한국문단에서 제법 오래된 이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미당문학상, 동인문학상, 팔봉비평상 등이 논쟁의 중심이 된 바 있다. 이 시기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심이 된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본격화되고,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가 일제말기 대일협력이 뚜렷한 친일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사죄하는 등, 친일문학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다. 한편에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명단 발표 및 재산환수와 관련된 특별법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다시 떠오른 친일문학상 문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보수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친일문학상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물론 2000년대를 기점으로 국문학계를 중심으로 친일문학의 존재 방식, 내적 논리, 문학사적 평가는 상당 부분 심화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띠는 문단에서의 친일문학이나 친일문학상 논의는 사실상 사라졌다.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 상의 심사에 관여하는 등의 일이 큰 이슈나 논쟁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친일문학상 수상자나 후보가 된 문인들이 개별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일은 계속되었지만, 해당 문학상의 주관기관 역시 여론의 향배를 주목해 사전에 수상 여부를 타진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사회적 논란의 발생을 봉쇄했다.
그러던 중 최근 광주 5.18기념재단이 제정, 운영하는 5.18문학상의 본상 수상자로 친일문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의 수상자인 김혜순 시인이 선정되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급기야 시인이 수상을 반려함으로써 다시금 친일문학상 문제가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하의 심포지엄을 열고 친일문학상 반대 여론을 촉진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간 잠복되어 있던 친일문학상 문제가 다시금 쟁점이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문인의 기념사업이나 기념물은 매우 다양하다. 문학상, 문학관, 문학비, 기념사업 등 그 주체가 한국의 주요 보수 언론사와 지방자치단체, 한국문인협회나 한국문화예술총연합 등인 경우가 많았다. 대상 문인들은 김기진, 김동인,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원수, 조연현,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등인데, 대체로 이들 친일문인에 대한 기념사업 주체는 대일 협력과 해방 후 문화적 기여의 공과를 동시에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특히 문학상은 거액의 상금과 문학제도 안에서의 예술적 탁월성에 대한 인정 논리라는 관점에서 시행되다 보니, 일견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갖고 있어 그 상의 수상을 기피할 것 같은 문인들조차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기념이 아닌, 기억되고 연구되어야 할 친일문인들
필자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주권국가에서 구식민지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인사들을 기리는 일체의 기념사업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논리로도 그들의 친일행위를 기념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은 역사적·문학적 모순이다. 물론 이 모순을 정당화하는 현실적인 구조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당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만 하더라도, 그것의 시행 또는 주관 기관이 거대 언론사인데다 또 파격적인 상금을 걸고 있다 보니, 개별 문인들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것이 인정 욕망이건 경제적 보상 심리이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상들은 문인들 자신이 수상을 거부한다면 안 받아도 되는 상이라는 점에서, 문인들 자신의 선택과 입장 역시 중요하다. 상당 기간을 거쳐 제도로 성립된 기념사업이 해소되는 일은 여하한 시민적 여론과 설득이 아니라면 어렵겠지만, 주체인 문인들 역시 책임이 면죄될 수는 없다.
친일문인상을 ‘척결’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일문인들을 여러 공공적 성격의 사업 형태로 ‘기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들의 대일 협력과 여러 형태의 정치적 훼절 등은 ‘기념’될 것이 아니라 ‘기억’되고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문제다. 이 문학의 환부를 적극적인 기억과 책임의 장 안에 정당하게 재배치해야 문학의 존엄 역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인 개인의 윤리적 선택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공적 기억의 계승 노력 역시 뒤따라야 한다.
사진 제공 한겨레
☞자료출처: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201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