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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동상 서울에 세우면 ‘동학과 촛불’ 만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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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이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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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에 이어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을 맡아 시민성금 모금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이화 선생. 올해 팔순으로 반세기 넘게 ‘동학정신’ 정립에 헌신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과 서울이 무슨 연고가 있나요? 동학혁명은 호남과 충청도 일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나요? 지난해 8월 맨 처음 제안을 했을 때부터 다들 이런 반문을 하죠. 하지만 동학군들은 처음부터 ‘한양’을 고지로 삼았어요. 전봉준을 비롯해 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한 등 동학혁명 지도부 모두가 서울에서 최후를 맞았고요.”

평생토록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를 해온 재야 학자 이이화(80) 선생은 19일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명함을 내밀며 ‘왜 서울에 전봉준 동상을 세워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설명했다.

“7월23일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해 대원군을 앞세운 1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게 되는 날로, 전봉준과 동학군이 서울 진격을 결의하게 되는 계기였어요. 서울에 전봉준상이 서는 것은 동학의 새로운 출발이자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민중사의 상징이 될 겁니다.”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전봉준 순국 122돌을 앞둔 지난 3월 창립총회와 학술발표회를 열고 ‘서울 전봉준 동상 건립 기금 마련’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봉준·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한 5명
1895년 4월24일 새벽 교수형당한 전옥서
지금의 종로 영풍문고 앞 소공원 자리

내년 4월 순국 123돌 기리는 ‘동상’ 제안
건립기금 5억원 목표로 시민모금중
“박정희·전두환 세운 기존물들 ‘정신’ 못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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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2월27일 전봉준 장군이 서울의 일본영사관에서 취조를 받은 뒤 법무아문으로 이송되기 직전 일본인 사진가 무라카미가 찍은 마지막 모습으로, 2015년 고 양상현 교수가 미국 대학에서 발굴해 공개했다. 

 

전봉준 장군은 농민군을 이끌고 서울로 향하던 1894년 겨울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총에 패한 뒤 전북 순창군 피노리로 피신했다가 부하의 밀고로 관군에게 붙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 설치된 권설재판소에서 신문을 받은 그는 이듬해 3월29일(음력) 대전회통 형전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부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관아를 점령한 자 지체없이 목을 벤다) 법규에 따라 사형선고를 받고, 이튿날인 3월30일(양력 4월24일) 새벽 2시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이날 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한도 함께 순국했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종각 건너편 영풍문고 앞 작은 공원 터가 바로 교수형이 이뤄진 옛 전옥서 자리예요. 다행히 시유지여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도 동의를 했고, 관할 종로서에서도 적극 협조를 약속했어요.”

이 이사장은 “내부적으로 동상 디자인 공모 절차를 이미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동학 124돌, 순교 123돌인 내년 4월 동상 건립을 목표로 최대 5억원의 성금을 모을 계획이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국민성금 전용’과 ‘회원기금 전용’ 두 개의 계좌가 적혀 있다.

“뜻있는 독지가의 거액 쾌척도 좋겠지만, 되도록 농민군의 후예인 일반 시민들의 십시일반 참여를 기대하고 있어요. 동상 성금만 내도 좋고, 이참에 동학혁명재단 후원회원으로 가입하면 더 좋겠죠.”

이 이사장은 “전봉준 정신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만화 책자를 제작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여러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공주 우금치, 전주 덕진공원 등에 있는 기존의 전봉준 기념조형물들이 장군은 물론 동학 정신을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그는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 때 쿠데타 추종 세력들이 ‘5·16 군사반란’을 ‘혁명’으로 미화하려는 동기에서 세운 곳도 있고, 81년엔 전두환 지지하는 비동학 단체에서 엉터리 내용으로 만든 곳도 있고, 87년엔 ‘전씨 집안’에서 나서서 세운 곳도 있어요.”

그는 “그나마 전주시에서 동학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긴 한데 예산에 막혀 별 진척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이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전국의 유적지를 답사하고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등 발로 뛰는 연구를 통해 ‘동학정신’을 발굴해낸 주역이다. 강단 역사학계의 무시 또는 무관심으로 ‘동학란’ 정도로 불리던 명칭을 ‘동학혁명’으로 재정립한 것도 그의 노고 덕분이었다. 1989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94년에는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 위원장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2006년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120돌이었던 2014년 개정본 <전봉준, 혁명의 기록>을 출간하는 등 관련 저서도 여럿 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2017-07-20> 한겨레

☞기사원문: “녹두장군 동상 서울에 세우면 ‘동학과 촛불’ 만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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