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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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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사진=tbs 공혜림 기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현 정부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의 뿌리도 ‘친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8주년을 앞두고 t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친일은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파시즘 철학”이라며 “적폐청산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철학을 가진 자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며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공식적으로 펴낸 지 오는 8일 8주년을 맞습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가 과거사 청산의 일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일파 청산에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8년에 걸쳐서 친일인명사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 18년 동안의 온갖 연구 축적을 모아서 낸 것이 친일인명사전인데, 이것을 2009년에 저희가 냈습니다. 이 사전을 낸 지가 벌써 8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 사전을 내고 나니까 국민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성원으로 이런 사전을 냈습니다, 약속 지켰습니다’ 하고 신고식을, 쉽게 말하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모 여자대학교 강당을 다 빌려서 계약을 해놨는데 하루 전에 못한다고 장소를 못빌려준다고, 대여 못해준다고 취소 통보가 왔어요. 할 수 없이 거기서 못하고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친일인명사전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열렬한 환영을 한 데도 불구하고 권력층, 집권세력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냉대하는 구나, 출판 기념회 장소까지도 강제 취소시켜서 못하게 하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친일인명사전입니다.

– 기자: 18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 임헌영: 거의 한 100여건의 각종 소송들이 있었고. 그 많은 소송을 1건도 우리가 진 게 없어요. 다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고. 특히 가장 고비를 겪었던 것은 인쇄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사전에 들어가 있다고, 박지만씨가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그땐 정말 우리도 위기를 느꼈어요. 그랬는데 아무리 권력의 압력이 있어도 결국은 재판장에서 친일파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우리 사전에 실린 기사를 보고 판결 나서 바로 발행할 수 있었던 거죠.

– 기자: 왜 박지만씨가 소송 냈을 때 가장 큰 위기를 느끼셨습니까. 

= 임헌영:  인쇄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내놓을 판인데. 박지만씨가 가처분 신청 내면 만약에 받아들여지면 다 찍어놓은 책을 못 내는 거예요. 정권도 이명박 정권 때니까 굉장히 위기를 느꼈죠. 다만 우리는 학술적으로 박정희가 썻던 혈서, 우리가 찾았잖습니까. 일본에 있는 국회 도서관에서 우리 연구원이 찾아서. 누구도 아무리 박정희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도 그걸 보고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죽하면 우리가 이겼겠어요, 재판에서.

그 후손들이 다 자기 조상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 사전에 들어가면 안 된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고 소송 걸었는데 우리가 친일했던 거 다 해명해주고 다 해결됐죠. 실제로 후손들 중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해당자가 대단히 억울한 측면들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민족사적인 전기를 볼 때,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과거사 청산해야 하고 우리 정치 개혁을 위해서도 이건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다. 이래서 우리도 참 냉험하게도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만 가지고 한 것이 친일인명사전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거고 후손들이 여기 와서 처음에는 분노해서 왔다가 나중에는 차근히 우리 취지를 설명 듣고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연구소 후원을 해주거나 회원이 된 분들도 있어요. 이게 정말 우리 민족사를 위해 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후손들로서는 우리 조상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이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옳았다, 그땐 다 친일했다, 친일이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히 곤란하고.

– 기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란 말씀이네요. 

= 임헌영: 이 사전을 보시면 저는 이게 쉽게 말하면 광복 8.15 이후에 우리나라 학문 연구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학문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권력은 아주 나쁘게 온갖 독재자와 쿠테타를 거쳐 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그 많은 축적돼온 학문 연구를 우리가 다 종합한 겁니다. 우리가 뭘 새롭게 연구한 게 아니고 그동안 나온 신문, 잡지, 논문, 학술지에 실린 각종 조사들, 기록들, 증언들 다 종합해서 객관적으로 그대로 썼습니다. 우리 사전 서술하는 방법이 ‘친일한 사람들 이렇게 해서 나빴다’ 이런 구절은 하나도 없어요. 행위 자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냉철하게 그야말로 냉철한 하드보일드라는 냉철한 문장으로 딱딱 객관적인 기사체처럼 역사에서 말하는 기전체처럼 그대로 쓴 겁니다. 8.15 이후에 산 분들은 이후 행적까지도 그대로 써줬어요. 후손들도 자기 조상이 그렇게 활동한 건 전혀 몰랐을 거예요. 이력서가 가장 자세하게 나온 겁니다. 8.15 이후 자기의 업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다 써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사전 나온 뒤에는 이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기자: 정치적인 색깔로 보는 분들도. 

= 임헌영: 많았죠.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단 말이예요. 정치, 사회, 군부, 경찰, 사법, 입법, 재벌, 종교계, 교육계까지도 모든 기관에 그런 분들이 지배했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볼 때는 이게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이었다가 민주화라는 게 불과 11년밖에 안 됩니다. 고작 민주화라는 시절을 보낸 게 4.19 뒤에 1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11년밖에 안 됐잖아요. 그 11년 동안에 있다가 친일 후손들이 또 집권해서 옹호해온 것 아닙니까. 국정교과서까지 만들고 추태를 보여주다 물러났지만. 그런 속에서 그 분들은 이걸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연구소는 어떤 정파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일파 청산에 찬성해주고 지지하고 도와주면 그건 우리 연구소 편이 되고.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비판하면 8.15 이후 제2의 친일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자: 후손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도. 

= 임헌영:  많았고. 우리는 일체 모든 연좌제를 반대합니다. 조상이 친일파였어도 후손이 훌륭한 정치가면 정치가로서 봐줘야지. 우리 연구소에서는 그 조상의 후손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절대 공개 안 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었을 때 판단 요청이 오면 그 정치가 때문이 아니고 친일을 한 당사자의 행적은 판가름해주는 거죠. 후손에게 피해가 가기 위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를 올바르게 판단해주는 역할만 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 기자: 학술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본 이유는 뭘까요. 

= 임헌영:  자기 조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죠. 친일을. 자기 조상만 친일파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엉뚱한 사람들도 이 사람도 친일파다, 이렇게 함께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지용 시인이 그랬죠. 친일 후손 중에는 정지용 시인도 친일했다, 왜 사전에 안 넣었느냐, 이거 정치적이다. 어거지를 쓴 거예요. 정지용은. 여러모로 검토하거든요. 친일파가 아닌 사람을 넣은 건 한 명도 없습니다. 사전을 처음 만들 때 집필진들에게나 친일파를 선정하거나 심의할 때 제가 했던 말이 ‘여기 여러분들이 친일파를 선정해서 실을 때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해라. 나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해 달라. 만약 내 할아버지가 여기 들어가면 기분 좋겠나. 나쁠 거다. 되도록 적게,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아무리 봐도 친일파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만 소수로 해서 뽑아라’. 엄선한 겁니다.

– 기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가요. 

= 임헌영: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위원장이 학자들이죠, 국사학자들. 그 밑에 필진들은 200여명. 몇십명이 각 분야별로. 수십명의 편찬위원들이 각 분야별로 다 나눠서 수십 차례 회의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합동 심사를 해서. 그 다음에는 제1차 수록 예상자 명단을 국민들에게 다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이의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친일 안 했고 독립운동 했다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 그러면 우리가 참고하겠다 해서 공고했죠. 한참 지난 뒤에 제2차 확정 명단을 또 발표했어요. 또 언제든지 이의 있으면 제기해 달라. 그동안에 각종 고소, 이의 제기를 한 게 100여건 됐다고 봐요. 그게 해결된 마당에서 책을 펴낸 겁니다.

사전이 나온 뒤에는 일체 말이 없어요. 그 전에 소송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해결됐지요. 오직 행위자의 팩트 자체만 가지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넣었거든요. 그 참고 자료를 각자 각자 한 사람마다 다 넣어줬습니다. 이런 사전은 없어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사람 하나마다 참고자료를 다 넣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심지어는 우리나라 자료, 일본, 중국 자료 다 뒤졌거든요. 오죽하면 국가기관에서, 교육부니 법원이니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자문해서 우리가 판단해 주거든요.

– 기자: 친일이란 역사가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 임헌영: 몇 십 년 전 일을 지금 들춰서 뭐하느냐.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자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세력이 오랫동안 집권한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하면 인종 편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존중합니다. 인디언 추장들도 자기 종족을 하나라도 죽이면 추장이 안 돼요. 우리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없어요.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이러지 않아요. 독재자, 군부 독재, 쿠테타 온갖 걸 식민지 이후에 겪어왔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하다가 우리가 친일인명사전 만든다 하니까 옛날 거 아니냐 하다가, 그 사람들 명단을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쿠테타, 독재, 부정부패에, 도둑이 큰 소리 치고 그걸 잡으러 가는 경찰들이 벌벌 피신해 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되레 피신해가지고. 이 거꾸로 된, 착한 사람이 피해 받고 나쁜 사람이. 그 원인이 뭐냐. 온갖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단 말이예요. 뭐든지 그 뿌리를 캐면 친일인명사전하고 다 연결된다.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동학군은 독립운동가를 낳고 독립운동가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쟁이를 낳고. 친일파는 독재자를 낳고 독재자는 재벌을 낳고 재벌은 많은 사장을 낳고.’ 삼대째 가난하게 산다고 소설에 그렇게 딱 나와요. 물론 그런 식으로 두부 자르듯이 그런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뿌리가 친일이고. 우리나라 걱정보다 미국 걱정을 더 하는 사람들. 어떻게 성조기를 드록 시위합니까, 태극기도 아까운데. 그것도 정말 친일파적인 발상이다.

– 기자: 과거 친일 가치관이 아직. 

= 임헌영: 아직도 미완이라고 보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히 나쁜 사람들이 상대편을 공격할 때 종북 좌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집권했잖아요. 자기 밑에 친일파들 배치해서 집권해서 독재하다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반공이었거든요. 자기 반대하는 건 빨갱이로 몰았단 말이예요. 친일인명사전이 나온다는데 ‘북한 사람 안 넣었다’. 너무나 무식한 소리입니다. 북한 사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했던 시인도 들어가 있어요. 남북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 소위 민족을 팔아 먹었다, 그런 사람은 이데올로기, 남북에도 관계 없고 돈 많든 없든 종교에도 관계 없이. 오직 그겁니다, 민족과 조국이 어려웠을 때 배신했느냐 안 했느냐. 거기에 딱 초점 맞춰서 판단했습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숫자가 그 당시 전 국민 2천만명으로 쳐도 소수입니다. 반대파들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대단한 친일파인 사람들은 뼛속까지 반대하는 거죠. 친일 옹호하고 우리를 빨갱이로 몰려고 작정한 분도 있고. 또 뭔지 잘 모르고 세상 그렇게 다 살았는데 그게 나쁘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방관자예요.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하는 행위가 뭔지 아는 똑똑한 사람들, 사회 지도급 인사, 판단력까지 가진 사람이 자기 행동으로 자기 하나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와 명예와 권세, 실세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우리가 넣은 거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교장, 면장, 우리 명단에서 다 뺐어요. 우리도 논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계형 친일, 먹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뭐 나쁘냐. 그런 사람들은 친일 행위를 안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계형 친일이란 말은 성립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친일파로 안 봅니다. 혹시 이 방송 들으신 분들은 전해주세요. 우리가 한 것을 우리가 앞으로 더 잘 살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평화 통일해서 우리 민족이 자주롭게 잘 살기 위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적인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 한 거지. 잘 사는 사람들 괜히 배 아파서 한 게 아닙니다.

– 기자: 요즘 ‘적폐 청산’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 임헌영: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입니다. 그걸 해결되면 상당수가 바뀌고. 그래야 정치가들이나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잘 사나 연구해야지. 결국 친일파 가치 철학. 사대 외세 의존하는 가치 철학이 그대로 유전되어서 유전만 되는 게 아니라 더 악랄한 수법으로 퍼져서 지금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적폐청산 1호죠, 아니죠 0호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친일청산은 항상 먼저. 친일파는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입니다. 파시즘 철학입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싫어합니다. 절대 평등을 안 해요. 자기 가족한테도 자기가 어른이고 우리 가족은 내 부하. 직장에서도 파쇼적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 민주주의를 싫어하죠. 그런 철학으로. 전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평화를 좋아하는. 가짜 간첩 만들고 탄압하고 이래야 자기들은권세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말이예요. 호혜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싫어 한단 말이예요. 그런 철학은 21세기 UN이 정한 세계시민에 위배돼죠. 아주 못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적폐청산을 그야말로 마약에 박근혜 정권이 그대로 있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지금 그 밝혀지는 세계 인류에서 볼 수 없었던 죄악입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최대 과제가 촛불 시민들이 바라는 적폐 청산입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일부 권세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인 보복이다. 그야말로 파시즘적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적폐청산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8·15 이후 첫 기회입니다. 항상 해야 하는데 못했어요. 4·19 이후에도 적폐청산 못했기 때문에 5·16 일어난 거고요. 근대 우리 민족사에 장애물이었던 국민 복지의 장애물, 평화통일의 장애물, 모든 부정부패, 권력 남용 다 들어가는 거죠. 독재 찬양도. 지금은 국정원에서 돈 대서 시민단체들이 전부 그게 독재 옹호하는 거잖아요.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임헌영: 사전이 나온지 8년을 맞았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8년 동안 만질정도 나갔어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게 웬만한 가정마다 비치서로 집안 비치서로 집안 한 권 있어야 하고. 모든 학교, 기관, 하나씩 들어가야 해요. 다 가지고 기본 가치관 자체를 파시즘적 철학을,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없고 이 생각 가져야 합니다. 친일파라는 개념과 그 사람들이 저지른 작태, 범죄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잘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서서 압력행사하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불안하죠. 그런 것만 인식하면 ‘아, 이런 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지금은요. 친일한 분들은 100% 돌아가셨습니다. 후손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자기 조상의 행위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자꾸 옹호하려는 데서 파시즘적 생각을 부활시키려고. 그러니까 독재정권 자꾸 옹호해서 마찰이 일어나는 거죠 . 진짜 소수거든요. 지금 거의 청산됐다고 보고. 소수가…. 유럽이나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실현했던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구시대적 파시즘적 많은 편이예요.

우리 연구소는 지금 이제 새로운 사옥을 사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돈이 많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20억을 빚지고 갑니다. 지금 이 사무실은 너무 좁고 강좌도 할 수 없고. 교통 좋은 데로 가서 강좌도 열고. 식민지 역사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거든요. 큰 기부를 해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공혜림 기자 abcabc@seoul.go.kr

<2017-11-06> tbs

☞기사원문: [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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