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11월 28일에 대관정 앞에서 촬영한 ‘을사조약 기념사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이토 특파대사의 수행원, 주한일본공사관 관원, 한국주차군사령부의 지휘관들이다. (<병합기념조선사진첩>, 1910)
▲ 전체 42명 중 신원이 확인된 22명
러시아제국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 있어서 정사상(政事上), 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절(卓絶: 견줄 데 없음)한 이익을 가진 것을 승인하며 일본제국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指導), 보호(保護) 및 감리(監理)의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이를 조애(阻礙: 저해)하거나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
이것은 1905년 9월 5일에 체결된 포츠머스조약 제2조의 내용이다. 러일전쟁의 전승국인 일본이 패전국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대목인 셈이다. 이로부터 두 달이 지난 1905년 11월 9일,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겉으로는 한국황실을 위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서울로 왔다.
경부선을 타고 남대문정거장에 도착한 그는 첫날과 이튿날만 공식 숙소인 손탁호텔에 머문 것을 제외하고 그달 29일 서울을 떠날 때까지 줄곧 한국주차군사령관인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관저에 머물며 이곳에서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기 위한 배후공작을 벌였다.
이윽고 11월 17일 경운궁 수옥헌에서 억지 조약을 성사시킨 이토 히로부미는 1주일이 지난 그달 25일에 필동에 있는 주차군사령부의 구내 호도원(好道園)에서 성대한 야유회를 거행하였다.
이때 이곳에 있는 큰 바위에 ‘보조지륭여천양무궁(寶祚之隆與天壤無窮: 천황의 융성함이 하늘땅이 무궁한 것과 같아라)’이라는 기념휘호를 새겨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날, 그는 일제침탈사와 관련한 여러 책자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한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게 된다. 이 사진의 촬영경위에 대해서는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25권(국사편찬위원회, 1998)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1905년) 11월 28일 화요일, 대사는 여전히 하세가와 대장 관저에 머물렀다. 본일 오후 2시 하세가와대장 관저에서 대사 일행, 후지나미(藤波) 주마두(主馬頭: 말을 관리하는 일본 궁내성의 한 직책) 일행과 더불어 공사관원, 영사관원, 군사령부 장교, 인천에 정박한 군함 이와테(磐手)와 스마(須磨)의 장교 등 일동이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러니까 이 사진을 촬영한 공간은 을사조약의 배후공간이던 하세가와 사령관의 관저로, 흔히 대관정(大觀亭, 소공동 112-9번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소공동을 일컬어 장곡천정(長谷川町)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집에서 유래한 명칭인 셈이다.
이 사진 자체는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면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었으므로, 차제에 이들이 누구인지를 한번 살펴보았더니 전체 42명 중에 22명의 신분이 대략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① 나베지마 케이타로(鍋島桂太郞: 외무서기관) ② 오타니 키쿠조(大谷喜久藏: 한국주차군사령부 참모장, 육군소장) ③ 후지나미 코토타다(藤波言忠: 주마두) ④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한국주차군사령관) 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특파대사) ⑥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주한일본공사) ⑦ 쓰즈키 케이로쿠(都筑馨六: 추밀원 서기관장) ⑧ 이노우에 요시토모(井上良智: 시종무관, 해군소장) ⑨ 시마무라 하야오(島村速雄: 해군소장) ⑩ 하기와라 슈이치(萩原守一: 일본공사관 일등서기관) ⑪ 야마구치 쥬하치(山口十八: 자작, 육군대위, 주차군사령관 부관) ⑫ 코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 일본공사관 서기관) ⑬ 무라카미 카쿠이치(村上格一: 해군대좌) ⑭ 미마시 쿠메키치(三增久米吉: 영사) ⑮ 무라타 아츠시(村田惇: 육군소장) ⑯ 카와시마 레이지로(川島令次郞: 이와테(磐手) 함장, 해군대좌) ⑰ 토치나이 소지로(栃內曾次郞: 스마(須磨) 함장, 해군대좌) ⑱ 카토 마스오(加藤增雄: 궁내부 고문관, 전 일본공사) ⑲ 쿠로다 카시로(黑田甲子郞: 주차군사령부 촉탁) ⑳ 후루야 시게츠나(古谷重綱: 일본공사관 외교관보) ㉑ 데부치 카츠지(出淵勝次: 영사관보) ㉒ 후루야 히사츠나(古谷久綱: 제실제도국 비서, 이토 비서)
<고종실록> 1905년 11월 15일 기사를 보면, 이토가 타고 온 군함의 해군장교들과 특파대사 수행원들 65명에 대해 일괄하여 태극장과 팔괘장이 수여된 사실도 드러난다. 멀쩡한 대한제국의 국권을 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에서 훈장잔치까지 벌이는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게만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병합기념조선사진첩(倂合記念朝鮮寫眞帖)> (신반도사, 1910)에 수록된 이 사진의 오른쪽 여백을 보면, 뭔가 흐릿하게 지워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도서관 소장자료인 윌러드 스트레이트 컬렉션에는 이 사진의 원본이 그대로 소개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거기에는 원래 맨 오른쪽에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인이 서 있었던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다.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꺼린 이 여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 이순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