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은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고(故) 임종국(林鍾國, 1929~1989) 선생 28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1일 충남 천안 신부동 평화공원에서 개최된 28주기 추모식에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유족, 지역민 등 6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 고인의 올곧은 역사의식과 친일 적폐청산 의지를 기렸다.
임종국 선생은 경남 창녕 출생의 시인·비평가·사학자로 1952년 고려대 정치학과에 입학, 1959년 ‘문학예술’에 시 ‘비(碑)’를 발표해 문단에 등단했고, 1960년 ‘사화집(祠華集)’ 동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그는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원인이 과거사 청산 부재에 있음을 직시,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천도교 지도자였던 부친 임문호의 친일 행적까지 한민족 앞에 솔직하게 고발한 임 선생은 1966년 ‘친일문학론’과 ‘이상전집’을 발간해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고,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역작을 남겨 한국 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970년 선문출판사에서 ‘발가벗고 온 총독’, 1974년 정음사에서 ‘한국문학의 사회사’, 1978년 평화출판사에서 ‘취한(醉漢)들의 배’를 발간한 그는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임 선생은 1980년대 초반 친일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천안으로 내려와 1989년 타계할 때까지 이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국사회풍속야사’(서문당, 1980), ‘정신대 실록’(일월서각, 1981), ‘일제침략과 친일파’(청사, 1982), ‘밤의 일제 침략사’(한빛출판사, 1984), ‘일제하의 사상 탄압’(평화출판사, 1985), ‘한국문학의 민중사’(실천문학사, 1986), ‘친일논설 선집’(실천문학사, 1987), ‘일본군의 조선침략사’1·2(일월서각, 1988·1989) 등을 펴내 천안을 친일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는 후학들과 함께 방대한 규모의 ‘친일파총사(親日派總史)’ 집필에 착수했지만 폐기종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89년 11월 12일 만 60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고인의 시신은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에 안장됐다.
임 선생이 남긴 선비정신과 다수의 저서, 자료는 후학들이 고인의 유업을 잇기 위해 힘을 모아 1991년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에 전수됐고, 창조적으로 계승·발전되고 있다. 사후 3년만인 1992년 그의 주요 저서인 ‘친일문학론’과 ‘일제침략과 친일파’가 영광스럽게도 제6회 심산상(心山賞) 수상도서로 선정됐다. 2005년 10월에는 정부가 고인의 친일연구 업적을 인정해 보관(寶冠)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임 선생은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어록을 남겨 후배 역사학자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
2005년 3월 출범한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란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올바르게 계승하고자 같은 해 11월부터 ‘임종국상’을 수여하고 있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천안 평화공원에 고인을 기리는 조형물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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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6> 금강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