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이 조선이 참가함으로써 순조롭게 열리게 되었다. 평창 ‘이후’를 걱정하는 소리가 국내외에서 나오고는 있지만 잘 안 되는 쪽으로만 전망할 이유는 없다.
동아시아에서 정치 외교 안보 무역 문화예술 스포츠 등 각종 역내외의 교류들이 벌어질 경우 한반도와 일본 중국 사이의 관계보다는 역외 국가인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미국은 큰 나라이고 각국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유럽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를 만들어왔고 계속 그렇게 하려하다 부작용을 빚어왔듯이, 동아시아에서 막바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다가 많은 시행착오를 빚고 있다.
당장 북핵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의 핵문제뿐 아니라 조선 체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조선측의 반발을 불러 북핵 보유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전개로 진화해왔다. 제네바 합의의 불발, 미국과 일본의 대조선 수교 거부가 오늘의 북핵 위기의 시발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핵보유도, 미국의 대조선 선제공격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이다. 한국의 확고한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의 핵 확산을 막아내는 것이다. 북핵에 대응하려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부르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어리석은 파국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게는 평창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서 평창 ‘이후’에도 동아시아에서의 긴장 완화와 평화유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평창겨울올림픽에 이어 2020년에 일본의 도쿄 여름올림픽이 열리고 2022년에는 중국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2022년에는 중국의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2026년에는 일본의 나고야에서도 아시안게임이 예정되어 있다. 평창에 이어 2020년부터 2026년까지 2년마다 중국과 일본에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스포츠 제전이 열린다. 동아시아에 세계와 아시아 국가들의 스포츠 축제가 몰려 있는 것은 중국과 일본 한국이 경쟁적으로 스포츠대회를 유치했기 때문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들 스포츠 축제 덕분에 전쟁위기가 계속 고조되기 어려운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2018년부터 2026년까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제전 기간 동안에 긴장완화를 확보하면서 조미(朝美)협상의 황금 같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명운이 달려 있다. 앞으로 언제 다시 동아시아에 이처럼 긴장고조와 전쟁 발발을 막아내는 평화의 방파제들이 구축될 수 있겠는가.
지난 150여 년 동안 중국 한반도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구미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불행한 과거사를 강요당해왔고 아직도 그 후유증 때문에 갈등과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합의되지 못하는 문제들은 그대로 짊어지고 가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긴장완화와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 또한 절실하다.
지금은 동아시아 국가와 인민들이 함께 누려온 문화유산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화해와 협동의 공동작업을 펼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할 때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앞서 중국 일본 한국 조선의 전통예술제와 대중문화축제, 동아시아 영화제, 동아시아 바둑대회, 청소년 프레올림픽 등 다양한 행사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행사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청소년 행사를 통해 인민들 특히 청소년들 사이의 친선과 교류가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앞날을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과제는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갈 것인가. 중국 일본 한국 조선의 정부당국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각국의 이해타산으로 아마 협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반응이 들끓을 것이다. 한국이나 조선 입장에서는 이미 평창올림픽도 끝난 마당에 무슨 올림픽, 아시안게임의 사전 문화예술 행사냐고 핀잔을 받을지 모른다. 한 치의 양보 없이 국익 계산에 골몰하는 각국의 관료들은 자기 나라 돈 한 푼도 내놓기 아까워할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화해와 친선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춘 원로들과 시민사회가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우선 평창겨울올림픽 행사 과정이나 이후에 중국 일본 한국 조선의 전직 총리와 국회의장들, 전직 문화부장관과 체육부장관 그리고 원로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이 이런 행사의 필요성과 과제를 놓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부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한편, 전통문화예술제, 대중문화축제, 동아시아 영화제, 동아시아 바둑대회, 동아시아 청소년 프레올림픽(규모 축소) 등의 행사를 위한 각국의 조직위원회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준비과정에 각국 정부 관료들에게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정부의 지원과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는 1980년 모스크바 여름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고 있다. 당시 최고조에 이른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결이 두 올림픽을 자본주의 올림픽과 공산주의 올림픽으로 갈라놓아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끝났음을 안다. 남북 간의 대결과 중국・일본의 대립을 보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절감한다.
하지만 한국과 조선의 화해와 양보 덕분에 이런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고 평화적인 개최가 성사되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 일본과 중국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 주최국이 아닌 한국과 조선이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에 앞장서는 것도 중국과 일본 두 나라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성사되지 않았던 동아시아의 화해가 의외로 스포츠 제전을 통해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