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
벌거벗은 시신 무더기 쌓여 있어
“조선인 30명 학살”기록 뒷받침
학살 부정한 일본 주장 정면 반박
19초 영상에 처참한 현장 담겨
미군 문서 “일본군이 총살”명시
발굴 교수 “극단적 인권말살 사례”
일본군이 패전 직전 조선인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집단 학살한 사실을 보여주는 영상과 문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학살 현장을 담은 영상을 최초로 공개했다. 영상은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이 2016~2017년 두 차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찾아 자료 조사와 발굴 작업을 거쳐 공개한 것이다.
일본군이 위안부 피해자를 학살했다는 기록은 당시 중국 국민당 기관지 <소탕보>(1944년 9월18일) 등 일부 매체 기사에 남아 있지만 영상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위안부 강제연행과 학살을 부정해온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인 것이다.
영상에선 매장을 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한 중국 군인이 벌거벗은 주검들을 둘러보다가 한 주검에서 양말을 벗기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 한쪽엔 계속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구진은 “공개본에선 흐리게 처리했지만 원래 영상에선 머리가 없거나 신체 일부만 남아 있는 주검도 있어 당시의 잔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고 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보는 듯한 이 영상은 1944년 9월15일 중국 윈난성 텅충에서 연합군 164통신대 사진중대 볼드윈 병사가 찍은 것이다. 19초 길이 영상에서 중간 7초는 텅충 성문 근처, 앞뒤 6초는 텅충 성안을 담고 있다. 영상을 발굴한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함께 공개된 연합군 보고 문서 등을 통해 이 영상이 “당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집단 총살당한 현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44년 5월 미-중 연합군은 중국 서남쪽을 따라 일본군 통신선을 끊는 ‘살윈 작전’을 펼쳐 일본군이 점령한 윈난성의 쑹산, 텅충, 룽링 등을 차례로 점령했다. 패전이 임박한 1944년 9월 당시 일본 작전참모였던 쓰지 마사노부 대좌는 중국 쑹산과 텅충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지원병력이 도착하는 10월까지 계속 저항하라”고 지시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사실상 ‘옥쇄(강제적 집단자결) 지시’라고 해석한다. 쑹산과 텅충에는 조선인 위안부 70~80명이 있었는데 옥쇄를 거부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을 일본군이 살해한 것으로 추측된다. 9월14일 미-중 연합 제54군이 저녁 6시55분에 보고한 정보 문서엔 “9월13일 밤 일본군은 (텅충)성 안에 있는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진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쑹산을 탈출한 여성 7명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만삭의 여성이 나왔는데,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준비 과정에서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힌 박영심 할머니였다.★ 당시 인명부와 포로기록을 통해 볼 때 쑹산과 텅충에 있던 위안부 피해자 23명은 탈출하고, 30명은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기타 확인할 수 없는 죽음도 많다.
1997년 중국에서 학살당한 한국 여성들의 주검을 담은 사진이 보도된 일이 있었다. 당시 사진엔 명확한 설명이나 관련 자료가 없어 위안부 피해자 학살 증거로 인정하는 데 논란이 있었다. 연구진은 전쟁 당시 동영상 기자와 사진기자가 함께 활동했다는 점에 주목해 그동안 사진과 함께 촬영됐을지 모르는 영상을 찾아왔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과 사진에서는 같은 옷차림의 중국 군인이 나온다. 촬영 각도와 주검 상태를 볼 때 영상과 사진은 같은 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을 진행한 성공회대 강성현 교수는 “당시 전황을 보고한 문서는 전부 수동태 문장이었는데 유일하게 1944년 9월14일 기록에서만 ‘일본군이 총살했다’고 주체를 드러냈다. 이미 발견한 사진과 이번에 확인한 영상, 문서를 교차 분석해 위안부 학살의 객관적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학살 동영상은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를 어떤 존재로 취급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다. 여러 군 자료에서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를 사람이 아니라 ‘특종보급품’으로 분류해 강제로 끌고 가서 성적 도구로 사용하다가 폐기하듯 학살했다.
강성현 교수는 “일본은 아베 정권 들어 위안부 피해자 증언조차 명확한 증거가 아니라며 묵살해왔는데,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전시동원 체제에서 자행됐던 극단적인 인권말살 사례를 정면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의 수정 역사주의, 증거주의 경향을 뒤집을 수 있는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콘퍼런스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의 고바야시 히사토모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연행을 직접 드러낼 만한 자료는 눈에 띄지 않는다며 여전히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일본군이 발리섬 등에서 직접 위안부를 동원하고 성노예 생활을 강요한 기록문서 182점을 내각관방에 제출하는 등 위안부 자료를 통해 진실은 계속 밝혀지고 있다”며 아베 내각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위안부 전문가가 참여한 콘퍼런스에서 박정애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 등은 남성 군인 시각에서 기록된 잔인한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하기 전에 했던 고민을 이야기하며 “일본 정부의 가해 책임을 입증할 자료는 이미 풍부하니 앞으로 자료 공개 전에 위안부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법을 토론해야 할 시기”라는 제안도 남겼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2018-02-27> 한겨레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학살’ 영상 처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