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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길이 전한다”… 포천 ‘전두환 공덕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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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 시민단체들 “43번 국도 전두환 친필 비석 철거해야”… 철거 민원 처리는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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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에 위치한 전두환 공덕비. ⓒ 임만철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기 북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포천시에 있는 ‘전두환 공덕비’에 대한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해마다 5.18 기념일이 다가오면 포천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공덕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 비석은 경기도 의정부~포천을 연결하는 43번 국도변 축석고개에 있다. 지난 1987년 43번 국도를 확포장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덕을 기린다면서 세워졌다.

이 비석은 높이 5m, 폭 2m의 대형 화강암으로, 비석 몸체 전면에 한자로 ‘호국로’라고 새겨져 있다. 43번 국도가 완공되면서 전씨가 직접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친필로 호국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있다.

“이 길은 전두환 각하의 분부로…”

비석 앞면과 뒷면의 녹색 받침돌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의 거룩한 얼이 깃들인 이 길은 전두환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서 호국로라고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라고 적혀 있다. 일종의 찬양 문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덕비의 측면에 “이 길은 6천만 민족의 민족통일 염원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호국 의지 그리고 12만 포천군민의 애향심이 만나는 민족웅비의 활로이다. 1987년 12월 10일 국회의원 이한동”이라는 글귀를 새긴 조형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찾아 볼 수 없다.

포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5월부터 도로 확장 공사를 시행하면서 이 조형물을 신북면 모처로 옮겼다고 한다. 이러한 글귀로 볼 때, 포천 지역에서 6선을 한 이한동(83) 당시 국회의원이 공덕비 건립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한동 전 의원은 포천 출신으로, 1981~2000년까지 국회의원(11~16대)을 지냈다. 내무부 장관, 국회부의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고 제16대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6월, 이 전 의원이 총리로 지명받았을 때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 인준에 반대하는 20가지 이유 중 한 가지로 포천 전두환 공덕비 건립을 제기하기도 했다.

공덕비 앞면 하단에 기재된 사업개요에 따르면 43번 국도의 사업기간은 1985년 2월~1987년 12월로 확인된다. 사업이 종료된 1987년은 같은 해 일어난 ‘6월 항쟁’ 이후로 제5공화국이 실질적으로 종말을 맞은 때이고, 다음해 2월 전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임기 종료 2개월 전에 공덕비가 세워진 것.

공덕비는 원래 축석초등학교 인근 무란마을 맞은편에 건립돼 있었으나 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지장물(공공사업 수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로 판정받고 1km 정도 떨어진 축석검문소 맞은편으로 옮겨졌다. 한적한 곳에 있다가 대로로 나오면서 많은 시민의 눈에 띄게 됐다. 당시 공사 시행처는 국토교통부 산하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었다.

 

현재 공덕비의 위치는 포천시와 의정부시의 경계로, 행정구역상 포천시에 속한다. 이곳은 시의 관문으로, 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이 통과하는 교차로다. 또 공덕비는 현재 ‘축석고개’ 전설을 담고 있는 향토유적 제40호인 범바위(효자바위)’를 정면에서 가로막고 있다. 이로 볼 때 마치 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양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민주정부에서 전두환 공덕비 처리 미루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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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공덕비 하단 녹색 받침돌에 새겨진 문구 ⓒ 임만철

또 43번 국도는 앞서 밝혔듯, 전씨가 호국로라고 명명했으나 지역민들이나 교통방송에서는 ’43번 국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14년 1월부터 시행된 도로명주소에선 도로를 따라 소재한 인근 주소들이 호국로라고 이름 붙여지면서 인근 주민과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지난 8일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와 민족문제연구소 포천지회를 포함한 경기북부지역 시민단체들은 전두환 공덕비를 철거해 달라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접수했다. 민원의 수령지는 포천시로 지정했으나 이틀 뒤인 10일 포천시는 국토교통부로 민원을 이송했다. 국토교통부는 4일 뒤 다시 포천시로 이송했고, 다음날인 15일 포천시는 다시 국방부와 국토교통부로 민원을 이송시켰다. 사실상 서로 떠미루는 모양새로,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6일 시민단체와 함께 포천 전두환 공덕비 철거 문제를 제기한 유병권 민중당 포천시의원 후보는 “광주 망월동 묘지 입구에는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바닥에 있다. 1989년 광주전남민주동우회가 이를 부숴 망월동 묘지에 박힌 것”이라며 “촛불로 수립된 민주정부에서 축석고개 전두환 공덕비에 대한 처리를 미룬다면 주권자인 시민의 힘으로 직접 공덕비를 철거하는 행동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유병권 후보는 또 공덕비의 내용이 수정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전씨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록이 적혀야 하고, 전씨에게 맞서 항쟁한 시민들의 역사적 기록이 적혀야 한다”라면서 “다신 이런 사람에게 당하지 말자는 교훈도 기록돼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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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 굳게 다문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25일 오후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 방문을 위해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도착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시민단체들은 공덕비가 있는 장소에 플래카드를 걸고, 지난 14일부터 출퇴근 시간에 시민들을 상대로 공덕비의 존재를 알리고 철거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뿐만 아니다. 17일에는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와 민중당 당원 등 10여 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5m 높이의 비석 전체를 하얀 천으로 가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비석 전면에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민중당 관계자는 “전씨는 호국이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는 헌정 질서 파괴자”라며 “공덕비를 당장 철거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원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 대표는 “전씨는 누가 뭐라고 해도 범죄자다. 범죄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 비석을 세운다는 문구가 비석 하단 녹색 받침돌에 새겨져 있다”라며 “범죄자의 친필 휘호가 있고 명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전씨가 통치기간 동안의 범죄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회고록엔 자기의 통치행위에 대해 미화하고 정당화하고 왜곡하는 내용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철거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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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공덕비’에서 일어난 퍼포먼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국도 43호선 축석고개에서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가 호국로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호국로라 불리는 국도 43호선은 1987년 완공됐으며 기념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친필 글씨로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 연합뉴스

한편, 포천시청 홍보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포천시가 설치한 것은 아니고 예전에 국도 공사하면서 준공식 때 세운 것”이라며 “당시 국토교통부와 국방부가 길을 닦았다.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검토는 하고 있다. 결정을 하더라도 국토부에서 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답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포천시에서 처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할 걸로 알고 있다, 관리 주체가 어딘지 애매한 상황인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는 방향이 잡힌 게 없다”라면서 “도로변 비석이나 조형물 관련해선 각 지방청과 국토사무소에서 실질적으로 한다, 전두환 공덕비 하단에도 최초로 비석을 설치한 곳이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라고 돼 있다, 서울청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2018-05-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후세에 길이 전한다”… 포천 ‘전두환 공덕비’를 아시나요

<2018-05-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후세에 길이 전한다”… 포천 ‘전두환 공덕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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