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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분실 찾은 일본인들 “식민지배, 박종철 고문치사까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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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고문 노덕술 설명에 숙연…”슬픈 역사에 통감…가슴 아파”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회원들 남영동 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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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분실 견학하는 일본인들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 견학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일본인 회원들. 2018.6.10 jk@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일본인들이 일본 식민지 시기까지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공간을 견학했다.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회원 20명은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회원들은 젊은 시절 일본의 운동권으로 활동하거나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노년층부터 최근 들어 양국 과거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청년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고문받다가 숨진 박종철 열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그 스승뻘인 박처원 치안감의 뿌리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노덕술에게 닿는다는 설명이 나올 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대공분실이 왕성하게 운영되던 시절 ‘국제해양연구소’라는 가명으로 정체를 숨겼다는 설명에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박 열사의 친구로 이날 안내를 맡은 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이 “나는 장안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았는데, 이후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면 그 기억이 떠올라 몸을 떤다”고 전하자 회원들은 탄식했다.

견학은 대공분실 본관 4층의 고문실 방문으로 이어졌다. 회원들은 과거 고문 피해자들이 끌려왔을 경로를 따라 건물 1층 뒷면의 작은 출입문을 지나 좁은 나선형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갔다.

회원들은 박 열사가 숨진 고문실은 물론 다른 방도 둘러보며 고문실 특유의 좁고 기다란 창문, 세면대, 변기 등을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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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분실 견학하는 일본인들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을 견학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일본인 회원들. 2018.6.10 jk@yna.co.kr

다나카 유키(25) 씨는 “고문이 일어난 배경과 분단의 역사에 대해 통감했다”며 “박 열사가 죽었다는 그 장소, 그곳에 박 열사가 들어갔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나카 씨는 “박 열사가 부모님께 쓴 편지도 봤다”며 “부모님의 기대를 받으면서 서울대에 갔는데, 한국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학생운동에 참가하다가 잡혀서 죄송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식민지배의 역사가 전후(해방 후) 한국의 역사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관심을 가져서 2014년부터 평화 활동에 참가해왔다”며 “한국 사회의 비(非) 평화, 여러 피해가 일본의 식민지배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민족문제연구소에 일본인 800여 명과 시민단체 12곳이 십시일반 모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 1억345만 원을 전날 기부했다. 이날 대공분실을 둘러본 회원들은 전날 기금 전달식에도 참가했다.

jk@yna.co.kr

<2018-06-10> 연합뉴스

☞기사원문: 대공분실 찾은 일본인들 “식민지배, 박종철 고문치사까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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