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취소되어야 한다>
김종필이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누리다 갔다. 법적 단죄도, 역사의 단죄도 없이 편히 살다 고이 눈을 감았다.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은 죄악이 얼만데, 그 죗값을 한 푼도 치루지 않고 갔다. 그래서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을 단 한명도 단죄하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위에 두텁디 두터운 한 켜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 쌓인다.
김종필의 죄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으나, 그는 4.19 민주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으며 이 나라에 군사독재라는 포악한 괴물을 풀어 온 나라를 수십년 피맺힌 고통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으로서 공작정치, 정보정치를 펴며 지식인, 학생 등 각계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 탄압하며 불구로 만들거나 저승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품격도 자존도 흥정대상으로 삼았던 용서받지 못할 자이다.
그와 박정희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부터 훼손되고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해 아직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반민주 세력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구부러지고 더러워지고 퇴행했는가?
그런 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면 살아가며 슬퍼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돈다. ‘국민’훈장이라니?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자는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더구나 민간인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라니? 나라꽃 ‘무궁화’가 그에게 어울리는가?
일각에서는 ‘족적’과 ‘예우’를 말하는 모양이나 ‘족적’도 어떤 족적인지가 중요하고 예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그의 족적을 기려 예우를 하려면 차라리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며 살다간 이름 없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족적을 기리고 예우하라.
우리 ‘국민’에게는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려는 DNA가 있는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사후에 면죄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이 본다면 굳이 선행을 하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니 살아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한국인의 율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못했는데 반민주 청산도 못한다면 어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사거와 함께 그의 죄명이 다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한 스크롤 되는 마당에 그런 자에게 최고의 훈장을 준다는 건 과거에 그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국민을, 그리고 역사를 얕보는 행위다. 거기에 ‘촛불’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부디 한평생 ‘허업’을 좇으며 살았던 한명의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사거에 정치적 저울질을 함으로써 이 정권의 정체성이 무언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그리고 역사의식이 어떤지 의심받을 짓 하지 말고,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들이 이 정권에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서, 한눈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라. ‘촛불’의 명령대로 강단있게 가라.
2018. 6. 25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범태, 여인철
(어제 제가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