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을 찌를까, 친일파 재산 환수-한겨레21(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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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찌를까, 친일파 재산 환수



현재 한국 파워 엘리트의 주류인 매판형·부역형 친일파의 후손들을 건드릴 수 있나


“이것은 혁명적인 법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요구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원회는 5월2일 18차 전원위원회를 열어 친일 반민족 행위자 9명의 명의로 돼 있거나 그 후손이 상속·증여받은 땅 154필지 7만7108평(25만4906㎥, 공시지가 36억원, 추정시가 63억원)을 국가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자는 이완용·이병길·송병준·송종헌·고희경·권중현·권태환·이재극·조중응 등 9명이다. 언론들은 “반민특위가 무릎 꿇은 지 58년 만에 국가에 의한 사실상 첫 친일파 단죄가 이뤄졌다”며 이번 결정을 반겼다. 국가 귀속이 결정된 땅은 관리청 지정이 끝난 뒤 국가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후손들의 행정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표 참조)



러일전쟁부터 해방까지 형성된 재산

법이 혁명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혁명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뜻한다. 의미는 이중적이다. 좋게 말한다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의 근거가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매우 진보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이 통상적인 법질서와 어울리지 않게 돌출적이라는 뜻이다.

위원회의 지난 활동은 이 법이 갖는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2006년 7월 발족한 위원회는 특별법 규정에 따라 1904년 러일전쟁부터 1945년 8월15일 사이 매국 조약에 연루된 자나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자 등 452명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정했다. 이들의 재산이 상속·증여된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호적 서류와 족보 등을 뒤져 친일파로부터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정밀한 가계도도 작성했다.

곧바로 재산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가 집중된 것은 재산의 형성 시점이다. 특별법은 환수 대상 재산을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 증여를 받은 재산’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해방된 지 6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어느 땅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땅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완익 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재산 취득 경위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밝히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특별법은 이완용이 친일 반민족 행위에 가담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과 이완용이 그 부친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제가 한반도에 배타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는 러일전쟁 개전(1904년 2월8일) 때부터 해방(1945년 8월15일)에 이르기까지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취득한 재산 모두를 환수 대상으로 정했다. 범죄와 그 구체적인 결과물인 재산 형성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지기를 포기하고, ‘친일파 단죄’라는 시대적 요구를 따른 결단인 셈이다. 특별법은 또 헌법상의 재산권 보호조항과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과도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재산을 빼앗기게 되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후손들이 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낼 게 불보듯 뻔하다.



               △ 5월2일 열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18차 전원위원회. 친일파 후손이
               받은 땅 7만7108평을 국가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법안 자체가 우리 법 질서를 뒤흔드는 ‘근본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 역사학계에서는 법이 친일파에 대한 ‘상징적’ 단죄에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금까지 그 예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조사 대상으로 꼽은 친일 반민족 행위의 종류는 20가지지만, 재산 환수 대상이 되는 친일 반민족 행위는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참의로 활동한 행위 등 2개에 불과하다. 친일 시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이른바 을사오적급 ‘매국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매국노’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1920년대 이후 불어친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의 파워 엘리트 집단에서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완용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은사공채 15만원(금값 기준 현 시가 30억원)을 받았고,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1600만㎡의 토지를 소유했지만 대부분 일제 강점기 초기에 처분됐고, 그가 죽은 뒤 재산은 뿔뿔이 흩어졌다.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2006년 펴낸 책 <경성기담>에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물려 받은 조선 귀족은 무능한 정부의 고위 관료로 재직하면서 갖가지 비리를 저질러 긁어모은 재산이 엄청났지만, 작위를 받은지 겨우 10년 만에 그 많던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심각한 생활고에 허덕였다”고 적고 있다. 난잡한 개인 생활로 자손이 많았던 송병준과 방탕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얻은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야반도주’해 객사한 순종의 장인 윤택영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일제와 결탁해 경제적 성장을 했던 매판 기업가·지주 등 ‘매판형 친일파’와 일제의 고급 관료로 식민통치에 이바지한 ‘부역형 친일파’들이다. 5월2일 조사위원회가 국고 환수를 결정한 땅의 공시 지가는 36억원어치로, 조사위원회가 지난 4월 말까지 법원에 보전 처분을 마친 땅 1185억원어치의 3%에 불과하다. 이빨 빠진 매국노 후손들의 재산이다.

조사위원회 쪽은 5월2일 기자회견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자를 살상하는 등 친일 정도가 중대하다고 보이는 사람도 조사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재산 환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매국형’ 친일파에서 현재 우리나라 파워 엘리트의 주류를 형성하는 매판형·부역형 친일파 후손들로 확장될 수 있다. 법적으로만 본다면 조사위원회는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의 동생이자 지금의 삼양그룹을 창업한 수당 김연수의 후손과 일제 고문 경찰의 대명사인 노덕술의 후손(그의 후손은 자신이 노덕술의 후손임을 모르거나,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에게서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과연 그 작업이 가능할까? 쉽지 않은 얘기다.



재산 환수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연구 대상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거창한 입법 목적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 재산 환수 논란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특별법이 이룬 것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 사이의 경계는 한국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역학관계를 정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재산 환수 그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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