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으로

전주시민 여러분,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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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집 아저씨의 기름때 묻은 1만원도 동참
[현장] 사이버 공간 뚫고 거리 나선 <친일사전 발간>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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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공간을 뚫고 거리로 나선 <친일인명사전발간> 거리모금 캠페인. 전주시 객사거리
ⓒ2004 오마이뉴스 심규상

“전주시민 여러분, 대한민국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외면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국회가 하지 못한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일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13일 오후, 때아닌 가두 방송으로 전주 중심가 중 하나인 객사거리(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가 시끌했다. 전북민족문제연구소 회원 10여명이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한 거리 성금 모금에 나선 것. 거리 한 복판에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의 힘으로’라고 쓴 천글씨가 걸려 있었다.

모처럼 겨울다운 날씨를 보인 늦은 객사거리에는 살을 에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지나는 행인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나같이 몸을 움추리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djsim_147631_1[175126]▲ 거리는 한산했지만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보내준 시민들의 관심은 컸다.
ⓒ2004 오마이뉴스 심규상

사이버 공간을 넘어선 거리 모금이 가능할까? 한산한 거리 표정에 모금에 나선 회원들의 얼굴에서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회원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일과 네티즌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5~10분에 한 두 명 꼴로 모금함에 성금을 채웠다. 중학생, 대학생, 청년, 할아버지까지 참여층도 매우 다양했다. 꼬깃꼬깃 접은 천원에서 이곳 저곳을 뒤져 주머니 돈 모두를 찾아내 성금함에 넣어주는 시민도 있었다.

한 청년은 “<오마이뉴스>를 봤지만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성금을 보내지 못했다”며 “거리모금을 통해 마음을 보태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생 많다” “화이팅” “끝까지 열심히 해달라”는 격려와 당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거리 측면을 따라 전시된 미당 서정주의 친일시 수십편도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한일고 2학년이라고 밝힌 두 여학생은 미당이 쓴 일제 당시 학병출전을 권유하는 ‘반도 학도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헌시를 가르키며 기자에게 “이게 사실이냐”고 거듭 물었다. 두 학생은 “이런 끔찍한 시를 쓴 시인인줄 몰랐다”며 “<친일인명사전>에 서정주도 이름이 실리냐”는 확인까지 잊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시민은 서정주가 쓴 ‘오장 마쓰이송가’를 보며 “오장은 당시 일본군 계급”이라며 “미당이 일본군을 장하다고 칭송한 시를 썼냐”고 되물었다.

때맞춰 전북민족문제연구소 최재흔 지부장의 가두방송이 터져 나왔다. “국회마저 반민족행위자를 숨기고 감싸는 일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역사를 바르게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어둠이 짙어졌다. 예정된 시간(6시)이 조금 넘어서자 회원들이 모금운동 종료를 선언하고 전시물 철거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인근 노점에서 호떡을 팔던 아저씨가 뛰어 왔다. 그는 모금함에 기름때 묻은 만원짜리 지폐를 넣고는 급히 노점으로 되돌아갔다.

기자가 성금에 참여한 이유를 묻자, 대답대신 연신 손사래를 치다 짧게 “낼 건 내야죠” 한다.

3시간 동안 꼬박 모금현장을 지키고 있던 이정팔(68. 전북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위원)씨는 “엉뚱한 일에 수천억원도 척척 배정하는 국회가 온 국민이 원하는 일에 쓰일 수 억원을 삭감하는 현실이 너무 슬퍼 거리까지 뛰쳐 나왔다”고 말했다.

전북민족문제연구소는 13일을 시작으로 오는 15일(오후 3시부터 6시까지)까지 이곳 객사거리 입구에서 1차 거리모금 캠페인을 연다. 이 단체는 또 익산시와 군산시 등 시·군 단위에서 2차 거리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2004/01/14 오전 7:34ⓒ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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